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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SSIBLE LIFE] #5 경계를 허무는 사람들:
무의와 피치마켓이 볼드 무브와 함께 만드는 세상 

2025-07-17 LG전자
붉은 하트 안에서 분홍색 옷을 입은 세 명의 인물이 자유롭게 떠다니고 있는 일러스트. 하단에 'BOLD MOVE'라는 텍스트가 있다.
Illustrator 키미 @kimi_etc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허물고,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묵묵히 자기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애가 무의미한 사회를 만드는 사단법인 무의(MUUI), 느린 학습자들의 성장과 학습을 지원하는 사단법인 피치마켓(Peach Market)도 그중 하나죠. 볼드 무브 팀은 이들을 만나 대화하고 함께하며, 장애와 다양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두 커뮤니티의 도움 덕분에 효율이 아닌 다양성이 중심이 되도록 단어와 문장을 다듬고, 커뮤니티 활동과 매거진이라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조용하게, 그러나 꾸준하게 더 나은 세상을 실제로 만들어가는 커뮤니티들을 소개합니다.  

사단법인 무의: 장애가 무의미해지는 ‘턱없는 세상’을 향한 여정 

지하철역 승강장에서 휠체어 사용자를 포함한 여러 사람이 둘러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무의 공식 홈페이지
지하철역 승강장에서 휠체어 사용자를 포함한 여러 사람이 둘러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무의 공식 홈페이지

무의는 외국계 대기업에서 홍보이사로 일하던 홍윤희 이사장이 설립했습니다. 2011년, 휠체어 사용자인 딸과 함께 외출했을 때 겪은 일이 계기가 됐는데요. 지하철역에서 휠체어 리프트 고장에 대해 문의하자, ‘승객이 있는 위치에 따라 관할 기관이 다르다’는 답변을 들은 겁니다. 홍 이사장은 이동할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는 글을 소셜 미디어에 공유했습니다. 이 콘텐츠는 국토교통부가 해명 자료까지 발표할 정도로 주목받았고, 홍 이사장도 ‘더 적극적으로 이동권을 말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았죠.  

이후 홍윤희 이사장은 딸과 함께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휠체어 이용자의 불편함을 포털 사이트 다음(Daum)에 연재하고, 후원받은 자금으로 제주 올레길의 접근성 콘텐츠도 만들며 더 적극적으로 활동했습니다. 그의 남다른 에너지는 서울디자인재단 공익 디자인 프로젝트, 지하철 교통약자 환승 지도 등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졌죠. 이런 활동을 더 체계적으로, 꾸준히 진행하기 위해 2016년 설립한 것이 바로 협동조합 무의였습니다.   

2022년, 회사와 무의 업무를 함께하던 홍 이사장은 오로지 무의 활동에만 집중한다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딸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말렸지만, 홍 이사장은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면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결정했다는데요. 여기에 탄력을 받아 무의의 활동도 더 많은 사람들을 향해, 더 가깝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성수동 일대에 경사로를 설치해 접근성을 향상시킨 ‘모두의 1층’ 프로젝트, 케이팝 브랜드들과 함께한 공연 접근성 가이드북 제작 등이 대표적입니다.  

스토리소사이어티와 무의가 함께 진행한 볼드 무브 커뮤니티 현장. 컨퍼런스룸에서 여러 명이 강의를 듣고 있다. 스크린에는 '그러면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이 띄워져 있고, 한 참가자는 턱을 괸 채 집중하고 있다.
스토리소사이어티와 무의가 함께 진행한 볼드 무브 커뮤니티 현장.

볼드 무브 프로젝트에서 무의는 볼드 무버들의 자신감, 솔직한 목소리를 끌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홍 이사장은 장애인을 수동적 수혜자가 아니라 또 하나의 고객으로 보는 관점, 그 방향성을 실제로 구현하려는 LG전자의 모습을 보고 협업을 결심했다는데요. 커뮤니티 현장에서는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가전제품으로 자기소개를 해보세요”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참가자들이 원하는 삶의 변화를 상상하도록 이끄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모두를 위한 접근성 사전’ 등을 포함한 매거진 속 표현 감수도 담당했죠. 덕분에 볼드 무브 팀도 미처 몰랐던 잘못된 단어와 문장들을 바로잡고, 다양성과 포용성이라는 핵심 가치에 충실해질 수 있었습니다.  

‘딸을 위한 더 나은 세상’에서 시작된 사단법인 무의는, 어느덧 비장애인들도 체감할 정도로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왔습니다. 휠체어 사용자들이 아무 걱정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여행을 떠나는, 낯설지만 더 나은 미래. 앞으로도 사단법인 무의는 그런 미래가 더 가까워지도록 나아갈 것입니다.   

피치마켓: 경계 없는 배움의 공동체를 꿈꾸다 

아이들이 마스크와 위생 장갑을 착용한 채 테이블에 앉아 요리 활동을 하고 있다. 한 아이는 작은 텃밭 모형에서 채소를 뽑고 있고, 다른 아이들은 주변에 놓인 재료를 만지고 있다.
아이들이 마스크와 위생 장갑을 착용한 채 테이블에 앉아 요리 활동을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글을 읽는 게 더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약 14%에 달하지만, 제대로 된 법적 기준이나 정의조차 없는 상황. 피치마켓은 이처럼 ‘느린 학습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과 도서, 공간 등을 기획하고 만들어 온 비영리 기관입니다. 피치마켓의 모토는 명확합니다. “느리다는 것이 학습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피치마켓을 창업한 함의영 대표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후, 유엔환경계획(UNEP) 한국위원회에서 기획협력팀장으로 일했습니다. 그는 대학생 시절, 법전 한 페이지를 이해하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릴 정도로 공부하는 게 힘들었다고 하는데요. 동기들도 비슷한 고민을 겪는 걸 보며,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정보를 학습할 수 있는 글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UNEP에서 일하며 정보 격차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됐고, 2014년 처음으로 발달장애인을 고려한 책을 만들며 자신만의 길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첫 도서는 실패했지만, 함 대표는 오히려 그 덕분에 부족한 점을 빠르게 파악하고 보완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학교 특수학급으로 매주 1~2번씩 출퇴근하며 느린 학습자들이 책을 읽는 방식, 어려움을 느끼는 지점을 1년 넘게 연구했죠.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번안한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호평을 받으면서, 피치마켓도 자리를 잡게 됩니다.  

한 어린이가 흰색 오븐의 다이얼을 돌리는 뒷모습이 보인다. 파란색 리본으로 머리를 묶고 파란색 앞치마를 입고 있으며, 옆에는 다른 어린이의 뒷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요리 활동에 참여한 어린이가 오븐의 다이얼을 돌리고 있다.

이후 피치마켓은 문학작품, 뉴스 등을 느린 학습자에 맞춰 300여 권의 도서를 제작, 출간해 왔습니다. 전국 특수학급에 학습 자료를 제공하며 정보 격차 해소에 앞장서고, LG전자와도 ‘가전학교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협업했죠. 당시 피치마켓은 이해하기 쉽고, 가족 대화의 소재가 되는 맞춤형 설명서를 개발했습니다. 500부가량 배포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8,000부 넘게 만들어졌을 정도로 반응도 좋았죠. 이때의 인연을 계기로 볼드 무브와도 함께하게 됐고, ‘구분과 경계가 없는 사회’라는 메시지에 힘을 보탰습니다.  

“저에게 진정한 다양성이란 특정한 단어로 정의되거나 강조되는 개념이 아니라, 구분과 평가 없이 서로를 존중하며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서로 다름을 구분하거나 특별히 배려하기보다는, 각자가 자신에게 충실하면서도 필요할 때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를 통해 다양성이 자연스럽게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를 위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용기’와 ‘요청에 응답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것이 다양성을 고려한 사회적 공존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_볼드 무브 Vol.1: 관점의 전환, ‘경계 없는 배움으로 만드는 포용적 커뮤니티 PEACH MARKET’ 인터뷰에서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효율과 편리함을 이유로, 느린 학습자에 대한 지원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때, 세상은 실제로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합니다. 그렇기에 피치마켓은 경계성 지능인, 발달장애인을 넘어 시니어와 다문화 가정으로까지 영역을 확대 중입니다. 앞으로도 피치마켓은 모두가 학습하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만들고, 사회와 연결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여정을 계속할 것입니다. 

‘다름’이 ‘가능성’이 되는 사회를 향하여 

사단법인 무의와 피치마켓은 ‘다름’을 ‘틀림’이 아닌 ‘특별함’으로 바라보는 세상,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가능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사회를 꿈꿉니다. 볼드 무브 프로젝트는 이러한 커뮤니티들과의 연대를 통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허물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를 위한 더 나은 삶’이라는 메시지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대담한 움직임은 이제 시작입니다. 장애와 비장애, 빠름과 느림의 경계를 넘어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사회를 향한 이들의 여정에 더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