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의 영역에서 브라운관 이후 가장 위대한 발명인 ‘LG 올레드(OLED)’는 예술에 어떤 영감을 주고 어떻게 예술의 한계를 확장하고 있을까요? 아트와 기술이 만나는 현장 최전선에 있는 LG 전자 HE 브랜드커뮤니케이션 담당 오혜원 상무를 만나 물었습니다.
Q. 프리즈의 공식 헤드라인 파트너가 LG전자의 하이엔드 TV 브랜드 올레드(OLED)라는 사실을 들었을 때,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LG 올레드가 그전부터 아트에 진심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오혜원 상무지금 생각하면 필연 같아요. ‘올레드’라는 기술이 시작된 지가 올해로 딱 10년째입니다. LG 올레드가 디스플레이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여기저기서 작가들이 ‘나도 올레드 좀 써볼 수 있겠느냐’는 제품 협찬 문의가 회사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거꾸로 생각을 해봤지요. 새로운 형태의 디스플레이기도 했을 테고, 다른 디스플레이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얇아서이기도 했을 텐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색의 재현력 때문이었어요. 미디어 아티스트들이니 얼마나 색에 예민하겠어요. 자신이 원하는 빨간색으로 디자인을 했는데, 아무리 보정을 해봐도 LCD나 LED로는 원하는 색이 나오지 않았던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완벽한 블랙을 LCD나 LED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는 점이 중요했지요.
Q. 올레드의 블랙은 세계적인 조각가 아니시 카푸어마저 인정한 ‘퍼펙트 블랙’이잖아요.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때 한 인터뷰에서 카푸어가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LG 올레드는 완벽한 검정을 표현할 수 있다”고요.
오혜원 상무아니시 카푸어는 모든 빛을 흡수하는 물질인 반타블랙의 독점 사용권을 사들였을 정도로 블랙에 집착하는 작가예요. 그런 작가가 선택한 디스플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요. LCD는 여러 장의 필름 뒤쪽에서 백라이트를 쏴서 색을 표현합니다. 이 백라이트의 광원을 LED로 사용하면 LED라고 부르지요. 결국 두 방식 모두 백색 광원이 필요해요. 그러니 아무 색도 없는 블랙을 표현할 때도 희뿌연 빛이 들어와 있을 수밖에 없지요. ‘OLED’(Organic Light Emitting Diodes)는 말 그대로 스스로 빛을 만들어내는 유기발광 소자가 픽셀 수만큼 들어 있는 방식입니다. 백라이트를 필요로 하지 않고 ‘완벽한 블랙’을 만들어낼 수 있는 현존하는 유일한 디스플레이인 셈이죠.
Q. 작가들 입장에서는 완벽한 캔버스를 손에 넣은 느낌이었겠어요.
오혜원 상무저희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 아, 이건 아트의 새로운 그리고 완벽한 캔버스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지요. 저희는 아트의 완벽한 액자를 만드는 유일한 기술을 가지고 있고, 그걸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전시하는 거라고 생각한 거죠. “우리 TV는 명암비가 무한대입니다. 완벽한 색상을 재현할 수 있습니다. 완벽한 블랙은 저희 TV에서만 볼 수 있어요”라고 소리치는 것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게 낫잖아요.
Q. LG전자가 아트에 진심인 건 알았지만, 작가들이 먼저 쓰고 싶어 했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습니다.
오혜원 상무재밌죠. 작가분들이 먼저 알아봤다는 사실이요. 물론 그전에도 아트의 영역에서 크고 작은 활동들을 하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펼친 지는 3~4년 정도 되었습니다. 저희가 하는 일은 ‘우리는 고급 문화를 후원합니다’라는 식의 그럴싸한 마케팅이 아녜요. 아트가 정말 우리를 필요로 하고, 우리도 진심으로 아트를 필요로 하는 그런 필연적인 관계죠.
Q. 전 지금 이 얘기를 들으면서 레이싱 팀이 떠올랐어요. 메르세데스-벤츠 같은 자동차 회사가 레이싱 팀을 꾸리고 최고의 레이서가 최고의 주행을 할 수 있도록 ‘최고의 머신’을 세팅해주는 것과 비슷하군요.
오혜원 상무매우 비슷해요. 성능과 가격 면에서도 스포츠카나 레이싱카 같은 면이 있지요. 그러나 시대는 점점 바뀔 거예요. 레이싱 팀에서 쓰던 기술들이 결국엔 일반 승용차에 톱다운 방식으로 이전되잖아요. 예를 들면 저희가 그동안 함께 수많은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며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던 기술력이 언젠가는 가정의 디스플레이를 바꿀 거예요. 아트 역시 바뀔 거고요. 지금 우리가 캔버스에 안료로 그리는 그림들이 올레드 화면 안으로 들어와서 전시되는 날이 곧 올 겁니다.
Q. 아까 잠깐 얘기한 ‘퍼펙트 블랙’에 대해 좀 더 얘기해보고 싶어요. 전 전시를 보러 다니는 게 일인 아트 기자인데, 사실 디스플레이로 완벽한 암흑을 만들려면 결국 껐다 켜는 수밖에 없거든요. 그건 프로젝터든 LCD든 마찬가지죠.
오혜원 상무퍼펙트 블랙이 유니버셜 에브리싱과의 작업에서 정말 중요했어요. ‘Transfiguration’(2020)이라는 작품을 전시하는데, 그 공간을 완전히 깜깜하게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어요. 다른 디스플레이였다면 불가능한 미션이었겠지만 올레드는 가능했지요. TV에 전원이 들어와 있는데도 그 공간에 들어서면 발을 내딛는 게 무서울 정도의 상태를 만들 수 있었죠. 당시 작품은 유니버셜 에브리싱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거대한 걸어 다니는 형체가 불, 물, 연기, 금속으로 재질을 바꿔가며 변화하는 작업이었는데, 암전에서 갑자기 등장하니 마치 실제로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것만 같고, 너무 근사해서 소름이 돋더라고요. 미디엄을 변화시키는 것만으로 놀라운 경험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었어요. 배리 엑스 볼(Barry X Ball)은 현대의 미켈란젤로로 불리는 조각가지요. 그분이 저희와 함께 폴란드 출신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의 형상을 바탕으로 한 엄청나게 복잡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의 실물 작품을 만들고, 이걸 촬영해서 3D 영상 형태로 전시한 적이 있어요. 카메라는 인물의 두상보다 조금 큰 그 조각상의 안과 밖 사람의 눈으로 보기 힘든 부분까지 유려하게 촬영해냈고, 올레드 TV를 통해 이 영상이 완벽한 색상으로 디스플레이 되지요. 작가님 말로는 영상을 보면서, 작품을 실제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엄청난 매력을 느끼셨다고 하더군요.
Q.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또 다른 면도 있지요. 얼마 전에 북촌의 한옥 이음 더 플레이스에서 열린 리슨 갤러리의 팝업 전시에서 그 유명한 아니시 카푸어의 TV 조각을 봤어요. 작년에 프리즈 LG 올레드 부스에 처음 전시되었던 작품이죠.
오혜원 상무1998년 작품 ‘Wounds and Absent Objects’의 다른 버전이에요. 작가가 처음 그 작품을 만들 때는 제대로 된 색상이 나오지 않아 불만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올레드 TV로 작업을 해보고는 ‘완벽한 색상이 재현된다’라며 새롭게 편집해 두 번째 버전을 저희 올레드 시그니처 롤러블 TV에 담으셨어요. 조각가로 본인을 정의하는 아니시 카푸어의 작품이 들어 있는 한정판 TV라 ‘티비 조각’이라는 별칭으로 불려요. 원래는 판매를 할 생각으로 만든 게 아니었는데, 어떤 분이 1호 작품을 사시기도 했어요.
Q. 그런 세계 최정상의 작가들과 함께 작업을 하다 보면, 아트 페어와 인연이 안 이어질 수가 없었겠어요. 게다가 신선하고 새롭고 지적인 아트 페어 프리즈와 손을 잡은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죠.
오혜원 상무프리즈와의 시작은 우연이었어요. 2021년에 〈LUX: New Wave of Contemporary Art〉라는 기획전을 런던에서 열었어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작가들을 섭외하고 예술계의 명사들을 초청하며 부단히 준비했지요. 그걸 준비하는 기간에 런던에서 프리즈가 열렸어요. 우린 작가들과 준비 중인 작품이 있었으니까 테스트해볼 요량으로 프리즈 쪽에 우리한테 공간을 달라고 요청을 했지요. 그게 계기가 되어서 정말 막무가내로 프리즈의 CEO인 사이먼 폭스(Simon Fox)랑 얘기 좀 하자고 만나서 스폰서십 계약을 맺고 싶다고 말했지요. 당시엔 이미 전 세계 최고의 아트 페어는 아트 바젤과 프리즈의 양파전이었어요. 아트 바젤은 아시아에선 이미 홍콩에 거점을 두고 있었고 조금 보수적인 면이 있어요. 반면에 프리즈는 젊고 포용적이고 진취적이라 저희와 어울린다고 판단했죠. 프리즈 기간 중에 하루는 사이먼이 묻더군요. “아시아에 진출하고 싶은데 어디가 좋을까?”라고요. 제가 대답했죠. “서울은 어때?”라고요. 프리즈 런던이 끝나갈 때쯤에 오랜 회의를 거쳐 “서울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이 났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거의 바로 3년 헤드라인 파트너십으로 계약을 연장했지요. 프리즈에 러브콜을 보낸 국내 기업이 꽤 많은데, 그때도 지금도 저희와 의리를 지키고 있어요. 그런데 그건 프리즈의 원칙 때문이기도 해요. 프리즈는 단순한 타이틀 스폰서십은 안 받아들이거든요. 아티스트와 협업을 할 수 있어야 해요. 커피 브랜드라면 커피 잔을 가지고 아티스트와 협업을 해서 작품을 만들어야 하고, 시계 회사라면 시계로 아트 에디션을 만들어야 하죠. 세계 최고의 디지털 캔버스를 만드는 저희 회사와는 애초에 궁합이 잘 맞는 파트너인 셈이죠.
Q. 그 외에도 구겐하임 뮤지엄 등을 통해 아트를 지원하는 사업도 펼치고 있지요.
오혜원 상무구겐하임 아트 뮤지엄에는 ‘아트 앤 테크놀로지 이니셔티브’라는 일종의 어워드를 하나 만들었어요. 단순히 아트를 후원한다기보다는 기술을 통해서 아트를 발전시킨 사람들을 선정해 후원하는 형식이죠. 첫 수상자로는 뉴욕 스토니브룩 대학의 교수이기도 한 스테파니 딘킨스가 선정됐어요. AI(인공지능)를 활용한 작품을 통해 AI가 습득하는 정보의 삐뚤어진 지형을 꼬집는 작품을 내놓는 작가지요. LG 올레드의 모토는 ‘WE INSPIRE ART’예요. 저희는 단순하게 후원만 하지는 않아요. 아트와 기술이 상호 영감을 주고받는 현장을 만드는 작가들을 후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