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팬데믹을 거치며, 디지털 헬스케어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의료와 헬스케어 분야에 디지털 기술이 접목되면서 태동한 분야인데요. 코로나19 이전에도 유망한 미래 분야로 각광받고 있었지만, 사람들 사이의 접촉이 극히 제한되는 팬데믹 시대에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의료 분야의 역할이 더 커진 것입니다. 국내외 많은 기업들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 진출하고 있는데요. 최근 LG전자도 미래 먹거리로 키울 신사업 분야 중 하나로, 이 디지털 헬스케어를 꼽은 바 있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의료 인공지능, 원격의료 등등 다양한 주요 세부 분야로 나눌 수 있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특히 최근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디지털 치료제(digital therapeutics)라는 분야에 대해서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LG전자도 최근 디지털 치료제 스타트업 에버엑스(EverEx)에 전략적 투자를 집행하는 등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죠.
‘디지털 치료제’란 무엇일까?
디지털 치료제란 한마디로, 치료 목적의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게임, VR 컨텐츠, 챗봇 등으로 환자를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디지털 치료제입니다. 과거에는 의료기기가 혈압계, 혈당계, 엑스레이 기기 등 하드웨어 위주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의 발전으로 의료기기는 소프트웨어로 범주가 확장되게 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디지털 치료제인 것이지요.
최근 몇 년 동안 디지털 치료제는 전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으면서,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연구개발 및 상용화가 추진되어 왔습니다. 가장 활발한 분야는 정신건강의학 영역입니다. 우울증, 중독, 불면증,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조현병, 치매, 자폐 등에 대한 디지털 치료제의 개발이 활발했고, 이외에도 당뇨, 암, 심혈관, 천식, 소화기, 자가면역질환에 대한 디지털 치료제의 개발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개발이 활발한 곳은 미국과 유럽입니다. 지금까지 미국 FDA가 인허가한 디지털 치료제는 적어도 30개 이상은 될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또한 독일에서는 40여개의 디지털 치료제가 허가를 받은 이후, 보험까지 적용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디지털 치료제의 대표적 사례
세계적으로 이 분야에서 가장 잘 알려진 회사는 페어 테라퓨틱스(Pear Therapeutics)라는 회사였습니다. 이 회사는 유일하게 FDA로부터 3가지의 디지털 치료제를 허가 받고, 2021년 나스닥 시장에 업계 최초로 상장까지 진행한 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리셋(reSET)이라는 중독 치료 목적의 애플리케이션을 2017년 FDA로부터 허가받았으며, 이는 업계 최초의 디지털 치료제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리셋은 알콜, 코카인, 대마 등의 중독과 의존성을 치료하기 위해서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만 사용할 수 있는 앱으로, 18세 이상의 외래 환자를 대상으로 기존의 치료 프로그램에 더해서 12주 동안 사용합니다. 이후 2018년에 페어는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 중독 치료 목적의 리셋-오(reSET-O), 그리고 2020년에는 불면증 치료용 디지털 치료제인 솜리스트(Somryst)를 허가 받았습니다.
알킬리 인터렉티브의 디지털 치료제 엔드에버알엑스(EndeavorRx)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태블릿 PC 게임 형태의 디지털 치료제입니다. 아동의 ADHD의 치료에서 집중력 증진 효과를 여러 논문을 통해서 입증하였으며, 2020년 FDA의 허가를 받았습니다. 이는 세계 최초로 처방을 받아야만 사용할 수 있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2022년 말 기준으로 불면증, 알콜 중독, 니코틴 중독뿐만 아니라, 뇌손상 환자의 시야 장애 개선, 소아 근시 등에 대한 10여 개의 디지털 치료제가 식약처로부터 임상 시험 계획을 승인 받아, 임상 시험을 활발하게 진행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지난 2023년 2월, 에임메드가 개발한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인 ‘솜즈’가 국내 1호 디지털 치료제로 인허가를 받았으며, 이어서 4월에는 웰트의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 ‘WELT-I’가 국내 두 번째 디지털 치료제로 인허가를 받았습니다. 현재 활발히 임상 연구가 진행되는 것을 미루어 보아, 머지않아 추가적인 인허가 사례가 도출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디지털 치료제의 숙제
앱이나 게임과 같은 소프트웨어로 환자를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는 참으로 흥미로운 분야입니다. 디지털 치료제는 환자들이 때와 장소에 구애 받지 않으면서, 간편하게 자기 주도적으로 치료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특히 기존의 하드웨어 기반 의료기기나, 의약품에 비해서 개발 비용 및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게 필요하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디지털 치료제는 장기적으로 본다면,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야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유망한 분야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아직 넘어야 할 산들은 많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산업적인 성과로 이어지기까지는 적지 않은 난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최근 업계에서는 큰 화제가 된 뉴스가 있었습니다. 바로 최초의 디지털 치료제 인허가를 받고, 나스닥 시장에도 최초로 상장하면서, 세계에서 이 분야를 선도해 온 페어 테라퓨틱스(Pear Therapeutics) 가 파산한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세 개의 디지털 치료제를 FDA로부터 허가 받은 이후에도 보험 적용 등에 어려움을 겪으며, 사업 실적이 제한적이었으며, 거기에 글로벌 경기 침체까지 겹치며 결국 자금이 바닥나버린 것입니다.
디지털 치료제는 의료기기의 일종이기 때문에, 기존의 의료기기가 연구, 개발부터 사업화에 이르기까지 거쳐야 했던 여러 단계의 난관들을 해결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디지털 치료제가 소프트웨어로 구성된 새로운 유형의 의료기기이기 때문에 기존의 의료기기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숙제들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에는 인허가, 보험 적용뿐만 아니라, 의사가 디지털 치료제를 처방하도록 설득해야 하고, 또 환자들이 디지털 치료제를 잘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규제기관, 보험, 의사, 환자 등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이 디지털 치료제는 아직 낯선 개념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각 이해관계자들을 어떻게 잘 설득하고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지가, 디지털 치료제가 의학적으로나 산업적으로 성공하기 위한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가면서
복지부는 지난 2월 28일, 디지털 헬스케어를 ‘제2의 반도체’ 수준으로 육성하여 국가의 핵심 산업 중의 하나로 삼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해당 발표에는 이 디지털 치료제가 핵심적인 요소 중의 하나로 여러 번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디지털 치료제는 우리에게 의학적으로나, 산업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앞으로 하게 될 것입니다.
디지털 치료제는 혁신적인 개념으로 전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으며, 향후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분야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산적해 있으므로, 장미빛 미래에 대한 희망과 함께, 단기적으로는 현실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관심과 연구개발, 투자 등이 장기적으로 건강하게 유지되어, 디지털 치료제가 향후 환자들의 삶과 국내 산업계에도 큰 가치를 창출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