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빛깔을 완성시키는 박진호 컬러리스트의 작업실은 아이러니하게도 온통 검은색이다. 작업실 가운데에 65인치 LG 올레드(OLED) TV가 설치돼있는데 무채색의 공간에서 유일하게 디스플레이만이 아름답고 묘한 색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영화 <신세계>부터 <아가씨>, 디즈니+ 오리지널 <카지노>까지 20년 넘게 여러 영화와 드라마의 색과 빛을 세심하게 매만져온 그가 오랫동안 LG 올레드 TV와 함께 작업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여러 필모그래피를 통해 보여준 색에 대한 감각은 물론 그의 작업 도구, 디스플레이의 세계에 관해서 대화를 나눴다.
Q. 요즘 어떤 작업 중인가.
이재규 감독의 차기작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란 넷플릭스 시리즈를 작업하고 있다. 요즘 시리즈들을 보면 장르적이고 범죄, 폭력을 다룬 자극적인 작품이 많은데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보다 더 착한 콘텐츠여서 DI 작업을 하며 ‘힐링’하고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도적: 칼의 소리>와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비질란테>, LG U+ 모바일TV 런칭작 <하이 쿠키>도 작업 중이다.
Q. 평소에 작업할 때 디스플레이에 둘러싸여 일하겠다.
맞다. 디스플레이 세 대를 나란히 놓고 작업한다. 가운데 HDR(High Dynamic Range, 디지털 영상에서 밝은 곳은 더 밝게, 어두운 곳은 더 어둡게 만들어 사람이 실제 눈으로 보는 것에 가깝게 밝기의 범위(Dynamic Range)를 확장시키는 기술)을 제공하는 LG 올레드 TV를 놓고 왼쪽에는 과거 포맷인 SDR(Standard Dynamic Range) 디스플레이, 오른쪽에는 방송용 표준 모니터를 둔다. 아주 어두운 방에 촛불 천 개를 켜 놓은 것과 같은 밝기를 ‘1000 니트(nits)’라고 하는데, DR의 밝기가 1000니트이다. 반면 SDR은 100니트인데, 노트북이나 과거 디스플레이로 볼 때의 밝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LG 올레드 TV는 1000니트이기 때문에 그보다 10배 밝다. HDR 디스플레이로 작업하면 밝기만 한 게 아니라 매 쇼트마다 섀도와 하이라이트, 콘트라스트에 대한 메타데이터가 함께 입력된다. 따라서 시청자도 LG 올레드 TV로 콘텐츠를 보면 입력된 메타데이터에서 산출한 화면을 보기 때문에 창작자의 의도를 가장 정확하게 볼 수 있다.
Q. 밤 장면을 보정할 때 어두운 부분을 디테일하게 잡아내는 디스플레이의 역량이 중요할 것 같다.
LG 올레드 TV의 밝기 스펙트럼이 넓으니까 필름 때보다 어두운 부분이 훨씬 잘 보인다. 픽셀 하나하나가 독립적으로 켜지고 꺼지기 때문에 완벽하게 블랙을 표현할 수 있어서 어두운 밤 하늘의 별 하나까지도 포함한다. 과거였다면 어둠에 묻혀서 안 보였던 것들을 보여줄 수 있어 연출자가 후경에 어떤 힌트를 심어둘 수도 있다. LG 올레드 TV로 작업할 때 얻을 수 있는 장점은 필름영화를 상영할 때와 비교하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필름 영사기의 광원은 가운데에서 주변으로 퍼지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비네팅 효과(사진 및 광학에서 화상의 중심부에 비해 주변부로 갈수록 화상의 명도 또는 채도가 감소하는 현상)가 생긴다. LG 올레드 TV에서는 비네팅이 전혀 생기지 않고 모든 영역이 다 고르게 밝다.
Q. 충무로의 DI 작업실들이 LG 올레드 TV를 많이 쓰는 편인가.
거의 100%일 것이다. 내가 아는 후반작업 업체들은 모두 LG 올레드 TV를 사용한다. LG 올레드 TV는 돌비 비전 (Dolby vision: 돌비에서 개발한 HDR 기술. 가장 밝은 부분부터 가장 어두운 부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명암, 색상을 디테일하게 표현한다.)을 지원하고 있는데다 국내 어디서든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HDR 모드에는 전 세계적으로 돌비 비전과 HDR10+가 있지만 업계가 돌비 비전을 가장 선호한다.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등 OTT 플랫폼들도 돌비 비전을 지원하는 디스플레이로 작업할 것을 권장하고, LG 올레드 TV는 HDR 표준 모니터와 가장 유사한 명암비와 RGB 밸런스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후반작업 업체들 100%가 LG 올레드 TV를 표준으로 삼아 작업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시청자로서도 일부 돌비 비전을 미지원하는 디스플레이 기기로 콘텐츠를 볼 경우 분명히 화질의 차이를 느낄 것이다. 예를 들어, 돌비 비전이 지원되지 않는 TV로 최근 내가 작업한 <카지노>를 디즈니+에서 켜면 돌비 비전 문구가 붙어있지 않고 HDR이라고 소개한다. 반면 LG 올레드 TV를 포함해 돌비 비전을 지원하는 디바이스로 같은 작품을 볼 경우, 작품 소개와 함께 돌비 비전이란 딱지가 함께 붙는다. 일종의 고급 화질 스펙인 셈이다.
Q. 영화 <대부>의 경우, 어떤 OTT에는 옛 버전이 올라와있고, 또 다른 OTT에는 리마스터링버전이 올라와있는데 같은 영화인데도 느낌이 많이 다르다.
다를 수밖에 없다. 요즘은 디스플레이가 달라졌잖나. LG 올레드 TV가 스크린보다 더 많은 영역을 보여주고 있고 지금 세대는 더 많은 영역을 보고 자란 세대다. 과거 작품들은 주변부가 잘 안 보여서 인물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식이였다면 지금은 인물과 배경 요소까지 다 볼 수 있다. 그만큼 관객 눈의 스펙트럼이 더 넓어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요즘은 머리카락을 한 덩어리처럼 보이게 검게만 표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블랙이 어둡게 한 덩어리처럼 보이는 걸 두고 업계말로는 “떡 진다”라고 하는데, 지금은 이런 현상이 없도록 머리카락의 결까지 다 밝 혀서 세세하게 보이게끔 작업한다.
Q. 블랙에도 디테일이 있다는 뜻이다.
맞다. 지금의 디스플레이로는 모두 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검은 정장의 옷깃이 잘 보이지 않아도 무시했지만 요즘 디스플레이의 경우 스펙트럼이 정말 넓으니까 블랙도 하나의 톤으로만 표현하지 않는다. 극장에서 필름영화를 볼 때는 인물 중심으로 봤다면 LG 올레드 TV를 통해 채도와 하이라이트를 더 신경 쓰게 된다. 어쩌면 기존에 놓치던 부분들을 디스플레이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면서 디테일하게 보게 되었다.
Q. 어둠 속에서 가려진 걸 밝히기도 한다면, 너무 밝게 찍혀서 날아버린 디테일을 살리기도 하겠다.
밝은 부분이 너무 밝으면 관객은 눈이 피로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필름 할 때나 TV로 볼 때나 너무 밝은 부분을 낮춰주는 건 필름작업 때나 지금이나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블랙에 있어서는 많이 다르다. 구석에 있는 벽과 벽 사이의 경계가 보이게 하거나 블랙의 질감을 더 자 세히 살리는 것이 요즘 방식이다.
Q. 20년 넘게 DI 작업을 해왔는데 세월이 흐르는 동안 디스플레이 기술은 어떻게 변했나.
23년 동안 영화 일을 해왔다. 처음 3~4년 동안은 CG작업을 했고 이후 색보정으로 넘어왔다. CG 작업을 할 때만해도 내가 갖고 있는 모니터 한대만 보며 작업하면 됐다. 하지만 색보정 작업은 관객이 볼 때 어떻게 표현되는지 디스플레이를 계속 확인하면서 세심하게 손보아야 한다. 디스플레이의 발전으로 관객이 볼 수 있는 요소들이 훨씬 많아졌고, 과거 스치듯 봤던 미술이나 배경, 소품 하나까지도 잘 보이기 때문에 관객도 나도 예전보다 구석구석 잘 보게 되었다.
Q. 마지막으로 컬러리스트에게 디스플레이는 어떤 존재인가.
도화지가 아닐까. 컬러리스트는 이 도화지에 색을 뿌리는 사람이다. 내 손가락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이 도화지는 따뜻해지기도 하고 차가워지기도 한다. 또 밝아지거나 어두워지기도 한다. 물론 색보정에 앞서 촬영 단계가 있기 때문에 디스플레이가 완전히 하얀 도화지는 아닐 것이다. 어느 정도 밑그림이 그려진 도화지에 가깝다. 컬러리스트는 그 밑그림이 그려진 도화지에 아름답게 색을 입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