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석의 논다논다] ①사냥모자와 수트를 입은 까도남, 지금은 셜록 시대

2012.03.15 이명석

2012년 1월 1일.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두근두근해하며 “오늘이에요. 바로, 오늘이에요.”를 외치고 있었다. 마야 문명의 시계가 멈춘다는 종말의 해를 맞이하게 된 불안감 때문일까?

아니다. 바로 이 날 영국 BBC의 드라마 시리즈 <셜록>의 두번째 시즌이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셜록 홈즈! 지난해 불과 세 편짜리 드라마로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로 떠오른 이 사람. 도대체 120년 전의 구닥다리 탐정이 이 시대의 아이콘이 된 이유는 뭘까?

sherlock

몇 년 전부터 낌새가 있긴 했다. 먼저 고전 추리소설의 복간 열풍 속에서 코난 도일의 명작이 [셜록 홈즈 걸작선] 같은 이름으로 여러 종 쏟아져 나왔다. 30~40대는 어린 시절 축약본으로만 읽었던 추리 명작을 제대로 된 번역으로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었고, 10~20대는 <소년탐정 김전일>과 <명탐정 코난>의 원조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장정도 고급스러워져 추리 소설 따위를 중후한 서가에 꽂아두어도 부끄럽지 않게 되었다.

sherlock공교롭게도 그 직후부터 셜록 홈즈를 재해석한 작품들이 국내외에서 대거 쏟아져 나왔다. 꽃미남의 대명사 주드 로가 홈즈도 아닌 왓슨으로 등장하는 <셜록 홈즈> 영화판은 액션 블록버스터로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독특한 감수성의 여성 만화가 권교정은 <셜록>으로 자기만의 홈즈 만들기를 즐기고 있다. 게다가 인기 드라마 <하우스>의 까칠한 주인공 하우스 박사가 공공연히 셜록 홈즈를 모방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이런 판국에 영국 본토의 드라마 <셜록>이 최후의 도장을 꽝 찍었다. 지금은 셜록 시대다!

드라마 <셜록> VS 원작 <셜록 홈즈>

드라마 <셜록>은 그 배경을 현대의 런던으로 탈바꿈시켰다. 오프닝 타이틀엔 런던의 새로운 상징물이 된 런던 아이(London Eye)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복잡한 일방통행로에는 관광객들을 엉뚱한 길로 데리고 다니는 택시들이 빠르게 오고간다. 도시만 변신한 게 아니다. 명탐정의 활약 소식은 신문 대신 블로그를 통해 알려지고, 드라마 화면 안엔 툭하면 문자 메시지 창이 등장해 자꾸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스크롤해야 할 것 같다. 두 주인공의 관계도 ‘홈즈’나 ‘왓슨’처럼 격식을 갖춰 성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셜록’ ‘존’이라고 이름을 부른다. 그만큼 둘 사이에 격이 없어지고, 걸핏하면 툭탁댄다.

sherlock

<셜록>은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현대적인 드라마다. 하지만 원작을 잘 아는 사람들을 킬킬거리게 만드는 교묘한 패러디도 곳곳에 숨어 있다. 원작에서 파이프 줄담배를 피우던 셜록 홈즈는 니코틴 패치를 붙이는 걸로 심의를 살짝 벗어난다. 왓슨은 원래 19세기말 영국과 아프가니스탄 간의 전쟁에 참전했다가 의가사 제대했는데, 이제는 현대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돌아온다. 하지만 홈즈의 그 유명한 하숙집 겸 집무실은 여전히 베이커가 221B 번지다.

어쨌든 셜록 붐은 셜록 자신이 만들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21세기의 셜록은 그 아닌 누군가가 이 역을 맡을 수 있었을까 싶다. 병약한 듯한 얼굴에 시니컬한 표정. 내뱉는 말의 절반은 자기 자랑, 나머지 반은 독설. 원작에 나오는 셜록 홈즈의 이미지와 매우 가깝지만, 또 깐죽대는 유머 같은 걸 보면 그만큼 현대적일 수가 없다. 여기에 그의 라이벌로 등장하는 짐 모리아티까지 장난기로 가득한 찌질남으로 등장하는데, 둘의 맞대결이 아주 가관이다. 결국 정상인에 가까운 왓슨만 둘 사이에서 고생이다. “이 자식들 도대체 뭐야.” 싶을 거다.

셜록 VS 하박사

셜록과 <하우스>의 하박사는 이제 본격적인 까도남 대결에 들어갔다. 둘은 자신이 전공으로 삼고 있는 범죄와 의학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다. 그러나 사회적 관계에서는 거의 낙제점이다. 셜록은 스스로 ‘고성능의 소시오패스’라고 말한다. 자기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니까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려면 이런 성격은 눈감아줘야 한다는 말이다. 하우스는 미중년의 탈을 쓴 미운 일곱살이다. 주변의 사람들을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 나 있다. 특히 누군가 선량한 의도로 의술을 행하려고 하면, 악착같이 그 위선을 밝혀내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을 봐준다. 심지어 사랑하고 찬양한다. 왜 그럴까? 너무 능력이 뛰어나서? 약간은 그런 면도 있다. 자존감 제로인 지금의 청춘들에게 그들은 부러워 죽을 정도의 자만감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두 괴짜는 자신들이 사회성이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런데도 방 안에 숨어 실험이나 하는 미친 과학자로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사람들과 부딪히고 문제를 만들면서도, 자신의 독한 유머로 그 관계를 중화시킨다. 그들은 언제나 “나는 혼자 있고 싶어” 라고 말하지만, 남들 다 노는 거실의 파티장에서 그러고 있다. 나 좀 봐달라 이거다. 그래 봐줄게. 우쭈쭈 우쭈쭈.

드라마 세계에서 CSI 류의 범죄 추리물은 이미 포화상태다. 그리하여 두 세기 전의 영웅을 끌고와 복고의 패션으로 분위기 전환을 꾀하고 있다. 그 시도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셜록>이 선보이는 수트와 사냥 모자 같은 클래식 패션은 그 자체로도 관심을 끌 만하다. 그리고 당분간은 이런 움직임이 계속될 것 같다. 이제 미국 CBS에서도 현대판 홈즈 드라마를 제작중이라고 한다. 왓슨 역할로 <미녀 삼총사>의 중국계 미녀 루시 리우가 캐스팅될 거라는 소문도 들린다.

뉴스레터 구독하기 | 최신 트렌드를 빠르게 만나보세요!

LiVE LG 뉴스레터 구독하기

LiVE LG의 모든 콘텐츠는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일부 글과 이미지는 저작권과 초상권을 확인하셔야 합니다.운영정책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