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머문 자리, 성북동
성북동은 조선시대부터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물이 맑고 숲이 우거진, 복숭아나무가 많은 곳이다. 우리에게 이곳은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로 더 익숙하지만 성북동은 비단 시만 머문 곳이 아니다. 옛 정취가 머물고, 사람의 향기가 머문 곳이다. 차를 타고 휙 지나치는 게 아니라 두 발로 구석구석, 쉬면서 놀면서 둘러볼 수 있는 행복한 동네기도 하다.
지하철 4호선을 타고 한성대 입구역에서 내린 후 6번 출구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가도 되지만, 체력이 된다면 천천히 걸으며 성북동의 가을을 제대로 느껴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멀티라이프의 도심 속 힐링여행] ③ 사람이 머문 자리, 성북동
1. 민족문화재 지킴이 간송을 떠올리다, 간송미술관
간송미술관은 한국 전통미술품 수집가인 간송 전형필이 세운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이다. 우리나라의 문화재와 미술품, 국학자료 등이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못하고 일본인들이 해외로 유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들여 수집했다. 훈민정음, 고려청자, 신윤복•김홍도•정선 등의 서화작품과 국보 13점, 보물 10점, 시•도 유형문화재 4점 등을 소장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애초 이곳은 매년 봄•가을 각각 한 달간만 무료로 개방해 전시관 밖 파출소까지 줄이 길게 늘어질 정도로 관람객들이 많아 관람하러 온 시민들이 아쉬워하며 돌아서는 경우가 빈번했다. 문턱이 높고 기다림에 지치기에 쉽지 않은 미술관이지만, 지금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상설전시를 하고 있어 편하게 관람할 수 있다. 간송미술관은 현재 개방을 하고 있지 않아 들어갈 수 없고, 문틈으로나마 엿볼 수 있다.
2. 운치 있는 정원이 있는 곳, 수연산방
그저 찻집으로 보기에는 뭔가 묘한 향기가 느껴지는 이곳은 수연산방이다. 상허 이태준 선생의 옛집으로 회색벽돌의 돌담에 곧게 솟은 나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아담한 마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태준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인정받고 한국 문화예술계를 주도했다. 1988년 해금조치가 내려진 후에야 다시 알려지게 된 문인으로 이 집에서 ‘달밤’, ‘돌다리’, ‘황진이’ 등의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의 삶을 엿보자면 수연산방에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많은 작품을 집필하게 되는데, 그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은 아마 이곳에서의 시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곳은 자연스러운 한국식 정원의 운치가 아름답고, 저절로 ‘휴식’, ‘힐링’이라는 말이 나온다. 커피 대신 시원하고 고소한 미숫가루 한 그릇하며 여유를 느끼기엔 이만한 곳이 없다.
#수연산방, 영업시간 : 11:30~ 22:00, 이용시간 2시간, 1인 1차 주문 필수, 예약은 4인부터 가능
3. 잃어버린 나를 찾는 곳, 심우장
만해 한용운 선생의 동상과 마주하고, 오래되고 좁은 골목을 오르다보면 ‘심우장’에 다다른다. 지금은 산등성이에 부자들의 대저택이 자리 잡았지만, 1933년 한용운 선생이 심우장을 지을 당시 이곳은 북쪽 성곽 끝 깊은 산중이었다. 심우장(尋牛莊)이란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곳은 ‘잃어버린 나를 찾는 곳’이다. 툇마루에 앉아 앞마당을 바라보면 그가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를 발견할 수 있다. 나무는 올곧게 하늘을 향해 자라고 있고, 만해 한용운 선생의 향기가 퍼져오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한용운 선생은 1933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만해가 북향집을 택한 이유는 총독부를 등지고 있던 이유는 단 하나 총독부에 등을 돌려 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평생을 저항하는 삶을 살았지만 광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고. 첩첩산중은 도시가 되었지만, 심우장에 서려있는 만해의 기개는 더할나위 없이 푸르기만 하다.
# 심우장, 성북동 222-1번지, 개방시간 – 10:00~18:00, 입장료 : 무료
4. 시인 백석을 향한 애틋한 사랑이 깃든 길상사
가을의 푸른 하늘을 지붕삼아 유독 맑고 깨끗해 보이는 길상사. 여기는 삼청각, 청운각과 더불어 세 손가락안에 꼽히는 고급 요정 대원각이었지만, 절로 새로이 태어난 곳이다. 길상사는 백석 시인의 연인이었던 자야 김영한 여사가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감명 받아 법정스님께 통째로 시주해서 만들어진 사찰이다. 고급 요정이 있던 자리지만 산속 쉼터에 온 듯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아름답고 슬픈 사랑의 시작, 김영한과 백석. 둘은 함흥의 김영한의 자취방에서 사랑을 키웠고, 백석은 김영한에게 ‘자야(子夜)’라는 호를 지어준다. 서울에서 보금자리를 틀고 동거를 시작했지만 백석 부모의 반대로 3년 만에 위기를 맞는다. 백석의 부모는 백석을 강제로 결혼을 시키지만 백석은 도망쳐 다시 김영한의 품으로 돌아온다. 함께 만주로 도피하자고 재촉하지만 김영한의 반대로 결국 백석 홀로 만주로 떠나고 이것이 영원한 이별이 되었다.
전 재산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한 그녀는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라고 말했다. 백석에 대한 김영한 여사의 사랑이 얼마나 애틋했는지 알만한 대목이다. 가슴 뭉클한 감동적인 순애보를 느낄 수 있는 길상사, 그녀의 사랑과 일생을 생각하면 여느 사찰과 다른 모습과 느낌을 받을 수 있다.
# 길상사, 성북동 323번지
5. 성북동 돈가스의 원조, 금왕 돈까스
얇고 넓적한 한국형 돈가스, 푸짐한 양으로 무장한 ‘금왕 돈까스’는 오래 전 경양식 집에서 먹었던 돈가스의 향수와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1987년 오픈한 이래 분점이 생겼고, 초창기에는 기사들이 즐겨찾았지만 이제는 일반 손님들로 자리를 꽉 채우는 유명한 맛집이 되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을 하면 대형접시 하나에 돈가스와 채소 샐러드, 완두콩, 마카로니 등을 푸짐하게 담아나온다. 먼저 크기에 놀라고 맛에 감동하게 되는데, 맛의 비결은 냉동육이 아닌 냉장육이라 한다. 두껍지는 않지만 크고 바삭하면서도 쫄깃한 돈가스 맛에 반하고, 유명 설렁탕집에서나 맛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아삭하고 맛있는 깍두기에 또 한번 반한다. 물론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돈가스 소스도 독특하다.
부모 손을 잡고 왔던 꼬마가 연인과 함께 이곳을 찾기도 한다는데, 돈가스 자체를 맛보러 오는 게 아니라 추억을 함께 맛 보러 오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성북동에 왔다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수제 돈가스를 먹어보라 권하고 싶다.
# 금왕돈까스 전문점, 금왕정식 9,000원, 안심돈까스 8,500원, 09:30~21:30, 둘째 넷째 월요일 휴무
부촌의 대명사로 알려진 성북동이지만, 이곳에서 사람이 머물고, 추억과 사랑이 머문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도시의 소음과 관광객들의 흔적이 넘치는 요란한 곳이 아닌 한적하고 여유로운 멋을 가진 성북동, 이곳의 매력은 아늑한 동네 같은 느낌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 곳 한 곳 지날 때마다 야근과 알코올, 스트레스에 찌들었던 정신이 정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 싶다. 성북동에서 나만의 힐링 자리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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