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을 넘어 감성을 만족시키는 디자인

2014.02.12 김신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기까지 수많은 물건을 사용한다. 그 물건들은 사람의 사용에 정확히 응답해야 한다. 그런 응답에 따라 형태가 만들어진다. 바로 디자인되는 것이다. 모든 인공물은 쓸모 있게 디자인되어야 한다. 컵은 물을 담을 수 있게 안쪽으로 움푹하게 파여야 하고 한 손에 잡을 수 있을 만큼 적당한 크기를 가져야 하며 테이블 위에 놓았을 때 쓰러지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쓸모라는 조건을 만족시키다 보면 같은 기능의 물건은 자연스럽게 비슷한 형태를 갖게 된다.

[김신의 일상 속 기호] ① 형태는 의미를 따른다

현실은 어떤가? 같은 기능의 물건이 비슷하기도 하지만, 엄청나게 다양하기도 하다. 브랜드마다 이른바 ‘차별화’라는 말을 지상명령으로 받들며 ‘다르게’ 디자인한다. 이건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가장 편안한 의자의 조건 중 하나는 의자 좌석의 끝부분을 아래쪽으로 살짝 휘게 디자인하는 것이다. 이래야 대퇴부가 좌석으로부터 압력을 덜 받아 혈액순환이 원활하고 오랫동안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다. 현실은 어떤가? 뻣뻣하게 끝이 각진 의자가 세상에는 훨씬 많다.

모던 디자인의 금언 중에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라는 말이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 시카고에서 활약한 건축가 루이스 설리반이 한 말이다. 그는 근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며 미국 마천루의 구조와 형태를 만든 개척자 중 한 명이다. 어쩌면 그의 시대에서조차 이 말은 지켜지지 않았다. 시카고에 지어진 초기 마천루들은 제각기 다른 조형언어를 발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능만으로는 디자인의 다양성을 결코 설명할 수 없다.

아름다운 곡선이 매력적인 나무로 만들어진 의자의 모습 riccardo blumer, laleggera chair, 1993

리카르도 블루머의 라레게라 의자는 좌석 끝부분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밑으로 휘어져서 대퇴부에 압력을 주지 않는다.

마르셀 브로이어가 디자인한 바실리 의자는 기능주의를 추구하는 바우하우스의 가구지만, 좌석의 끝부분은 인체공학적으로 덜 기능적이다.marcel breuer, Wassily Chair, 1925
마르셀 브로이어가 디자인한 바실리 의자는 기능주의를 추구하는 바우하우스의 가구지만, 좌석의 끝부분은 인체공학적으로 덜 기능적이다.

기능보다 의미를 선택한 니코보커 야구 클럽의 유니폼

남자 아이들은 핑크색이나 붉은색 옷을 주면 결코 입으려 들지 않을 것이다. 그 옷이 아무리 좋은 재료를 써서 완성도 높게 만들어졌어도 색상에서 여성의 기호를 읽기 때문에 거부하는 것이다. 색뿐만 아니라 꽃무늬 장식과 같은 여성의 기호가 담긴 옷을 입으라고 하면 남자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수치심을 느낀다. 세계 최초의 야구팀인 니커보커 클럽은 유니폼의 소재로 모직을 선택했다. 모직은 면보다 훨씬 비쌀 뿐만 아니라 운동하기에도 불편했다. 활동성이 많은 노동자들이 입는 면이 몸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데 더 적합한 소재다. 19세기 중반에 생긴 야구는 당시 귀족 스포츠였고, 그런 부유한 사람들이 노동자의 기호인 면을 입는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기능을 희생시키고 상징과 의미를 선택한 것이다. 이는 대통령부터 사장님, 조폭두목까지 모두가 검정색 대형 세단만을 고집하는 이유와 같은 맥락이다.

모직으로 만든 최초의 야구팀 니코보커 클럽의 유니폼은 면보다 불편한 모직을 소재로 선택했으며 운동하기에 불편해 보인다. 이는 기능성보다 사회적 계급을 표시하는 데 더 적합한 디자인이다.

모직으로 만든 최초의 야구팀 니코보커 클럽의 유니폼은 면보다 불편한 모직을 소재로 선택했으며 운동하기에 불편해 보인다. 이는 기능성보다 사회적 계급을 표시하는 데 더 적합한 디자인이다.

상품은 기능만으로 선택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상품의 형태, 크기, 비례, 질감, 색상에서 어떠한 뜻을 읽는다. 그것은 특정한 집단을 의미하기도 하고 특정한 시대, 특정한 지역, 특정한 라이프스타일을 뜻하기도 한다. 그것은 때로는 기능보다 훨씬 더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된다. 왜냐하면 사회는 특정한 집단에 어울리는, 또는 그들이 갖추어야 할 형식이 있다고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무시하고 기능과 품질만을 생각하다간 시장에서 낭패를 볼 수 있다.

기능을 넘어 감성을 만족시켜 준 성인을 위한 기저귀 

외형이 갖는 의미를 잘 녹인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일본의 의상 디자이너 ‘츠무라 코스케’는 성인을 위한 기저귀를 디자인했다. 나이 들어, 또는 병이 나서 배뇨 조절을 못하는 성인도 있다. 그들에게 기저귀는 필수적이다. 불행하게도 기저귀 모양은 아기들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성인이 기저귀 찬다는 건 서글프고 부끄러운 일이다. 더욱이 그 모양마저 어린이 것과 같다면 얼마나 스스로 비참해질까. 츠무라 코스케는 이 점을 배려해 트렁크형 기저귀를 디자인했다. 트렁크형이라면 오줌이 새는 거 아닌가 하고 그 기능이 의심스럽다. 그 점은 고분자 흡수 소재를 안쪽에 추가해 깔끔하게 해결했다. 어쩔 수 없이 기저귀를 차야 하는 성인이라도 그것이 트렁크라면 인생의 서글픔과 처량함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이는 디자인의 기능을 넘어 감정이라는 부분에서 만족을 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형태는 기능만이 아니라 의미도 따라야 하는 이유다.

츠무라 코스케가 디자인한 어른을 위한 기저귀는 기저귀를 찰 수밖에 없는 어른의 수치스러움을 덜어주고자 일반 트렁크 모양으로 디자인했다.

 츠무라 코스케가 디자인한 어른을 위한 기저귀는 기저귀를 찰 수밖에 없는 어른의 수치스러움을 덜어주고자 일반 트렁크 모양으로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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