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풀어보는 서울의 지명
산의 남쪽, 물의 북쪽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뭘 어쩌자구?”라는 분 있을지 모르겠다. 한사오궁(韓少功)이라는 중국 현대작가의 소설 이름으로도 유명한데, 사실 그보다는 유래가 훨씬 오래인 말이다.
산의 남쪽, 물의 북쪽이 드러내는 글자는 바로 陽(양)이다. 멀리 돌아갈 일 없다. 음지(陰地)와 양지(陽地)를 먼저 떠올리면 좋다. 음지는 추운 곳, 양지는 볕 바른 곳이다. 우선은 지구의 북반구(北半球) 산을 두고 부를 때 가능한 말이다. 특히 중국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한자 그물로 중국漁 잡기] ① 산남수북(山南水北)
ㅣ산의 남쪽, 물의 북쪽을 의미하는 산남수북
지구의 북반구 산지(山地)에는 남쪽에 볕이 잘 든다. 북쪽은 응달이 지게 마련이다. 그러니 산을 중심으로 남쪽이 볕을 가리키는 陽(양), 북쪽이 응달을 지칭하는 陰(음)이다. 산을 중심으로 가르는 음양(陰陽)의 이치가 제법 그럴 듯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물의 북쪽을 陽(양)이라고 한 점 말이다. 왜 물의 북쪽을 그렇게 불렀을까. 이 점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조선의 도읍 ‘한양’의 지명에 얽힌 유래
물과 산을 기준으로 붙인 지명 중 우리에게 대표적인 것이 옛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漢陽)’이다. 여기서 漢(한)이라는 글자가 문제다. 서울의 북쪽을 병풍처럼 가르고 있는 곳이 북한산(北漢山)이다. 서울의 남쪽으로는 한강(漢江)이 유장한 흐름을 보이며 지나간다. 그러니 산 남쪽, 물의 북쪽을 지칭하는 산남수북(山南水北)이라는 성어에 대입한다 해도 틀림은 없다. 북한산의 남쪽, 한강이라는 큰물의 북쪽이니 말이다.
그래서 조선의 수도 서울은 ‘한양’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불렸다. 천연적인 조건으로 볼 때 ‘산남수북’의 조건에 모두 부합하니 그렇다. 그래서 줄곧 500년 가까이 그 이름을 애용했지만 우리가 따지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산의 남쪽은 북반구의 특성상 볕이 잘 들어 陽(양)이라고 볼 수 있으나, 한반도의 지형을 흐르는 물의 북쪽에 같은 의미의 글자를 붙이기는 조금 억지스럽다. 서울의 강남이 강북에 비해 볕이 적게 드는 지역이랄 수는 없기 때문이다.
ㅣ옛 조선의 수도 한양을 그린 지도다. 지금의 서울 일원이다. 북쪽에 북한산, 남쪽에 한강이 흐른다.
이 지형의 특성 때문에 조선은 도읍의 이름 하나로 ‘한양(漢陽)’을 골랐다. 절반은 맞는데, 절반은 맞지 않는 작명이다.
(이미지 출처 : 서울 역사 박물관)
중국이 만들어낸 성어, 또는 지리적 개념을 한반도에 적용한 결과다. 서북쪽이 높고 동남쪽이 낮은 이른바 ‘서고동저(西高東低)’의 지형 때문에 중국의 강은 대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며, 물이 넘칠 경우 대개 강 남안(南岸)을 향한다. 물이 흘러넘치는 곳은 음습하다. 그러니 중국인들은 강의 남쪽을 음습한 곳으로 봤다. 반대로 강의 북쪽은 남쪽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조하며 말라 있다. 그런 까닭에 강을 기준으로 북쪽을 陽(양)으로 지칭할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강은 대개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른다. 물의 흐름이 다르다. 그러니 강의 남쪽에 물이 넘친다는 중국 식 개념은 맞지 않는다. 그러니 산을 기준으로 할 때 조선의 도성을 북한산 남쪽이라고 해서 한양이라고 부른 점은 수긍이 간다. 그러나 한강을 기준으로 할 때의 지명은 부적절하다.
조선의 500년 도읍 이름을 깔보자는 얘기는 아니다. 중국 땅의 모양새와 엄연히 다른 우리의 지형을 독자적으로 감안하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릴 뿐이다. 스스로를 ‘소중화(小中華)’로 자리매김하면서 중국을 일방적으로 추수(追隨)하다가 망국의 운명을 맞은 조선의 어두운 그림자도 떠오른다.
중국에 그런 지명 참 많다. 洛水(낙수)의 북쪽에 있다 해서 붙은 이름 洛陽(낙양), 瀋水(심수: 지금은 渾河로 이름이 바뀌었다) 북쪽에 있어서 얻은 瀋陽(심양)이 다 그렇다. 華陽(화양)은 華山(화산) 남쪽에 있어서 지은 이름이다. 衡陽(형양)은 衡山(형산) 남쪽의 도시 이름이다.
付諸東流(fù zhū dōng liú 부저동류)라는 중국 성어가 있다. 제 삶 속의 설움과 탄식, 원망과 슬픔 등을 모두 동쪽으로 흐르는 강(東流)에(諸=之於) 던져버린다(付)는 뜻이다. 중국인의 문학적 감성이 담긴 말이다. 그러나 한반도 강의 흐름과 다르니 우리 심사를 표현할 때 쓸 필요는 없다. 放馬華陽(fàng mǎ huá yáng 방마화양)이라는 성어도 있다. 주(周)의 무왕(武王)이 은(殷)을 정벌한 뒤 말을 華山(화산) 남쪽, 즉 華陽(화양)에 풀어 줬다는 스토리에서 나온 성어다. 곧 평화와 종전(終戰)을 의미하는 말이다. 우리 서울의 지명 ‘화양’도 이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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