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TV 시장은 자동차 시장과 닮은 구석이 있다. 차세대 기술이 이미 상용화된 상태지만 기존의 기술 역시 꾸준히 최적화를 거듭하며 시장에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시장의 경우, 출력이나 정숙성, 친환경성 면에서 월등한 수소차나 전기차가 이미 상용화되어 점유율을 높이고 있지만, 아직도 시장의 주류는 가솔린, 디젤 엔진 등의 내연기관을 탑재한 기존 차량이다. 값이 더 저렴하고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동차 업체들은 수소차나 전기차의 비중을 높이면서도 내연기관 차량의 연비나 출력, 정숙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현재 TV 시장에서 자동차 시장의 수소차, 전기차에 비할 만한 차세대 제품은 OLED(Organic Light Emitting Diode, 유기발광다이오드, 올레드) TV다. 그리고 기존의 내연기관차에 비할 만한 기존 제품은 LCD(Liquid Crystal Display, 액정) TV로 비유할 수 있다.
압도적 화질 자랑하는 OLED, 그래도 매력 여전한 LCD
OLED TV는 OLED 방식의 수많은 화소로 화면을 구성한다. 각 화소가 스스로 빛을 내서 이미지를 생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덕분에 화면 반응 속도가 매우 빠르며, 시야각이 넓어 상하좌우 어느 쪽에서 보더라도 이미지의 왜곡이 없다. 그리고 해당 부분의 화소를 끄는 것 만으로 진한 블랙을 구현할 수 있는 등, 섬세하고 정확한 컬러의 표현이 가능하다. 그 외에 화면을 둘둘 말았다 펼치는 롤러블(Rollable) 형태의 TV를 구현할 수 있고 두께가 매우 얇은 TV도 만들 수 있다.
반면, LCD TV는 인가 전압에 따라 분자의 배열이 변하는 액정을 이용해 각 화소를 구성한다. 신호 입력과 거의 동시에 이미지 전환이 가능한 OLED와 달리, 액정은 신호 입력과 표시 전환 사이의 시간차가 존재한다. 상대적으로 화면 반응 속도가 느려 잔상이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액정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므로 별도의 백라이트(Backlight; 후방조명)의 탑재가 필수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제품의 두께를 일정 수준 이하로 줄일 수 없으며, 롤러블 같은 재주도 부릴 수 없다. 각 화소의 빛을 섬세하게 제어하는 능력 역시 OLED보다 훨씬 떨어진다.
다만, 이렇게 거의 모든 면에서 OLED TV가 LCD TV보다 우월함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LCD TV가 시장의 주류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TV 시장에서 OLED TV의 점유율은 2020년 매출액 기준 6.5%를 차지했다. 그리고 올해에는 8.4%, 그리고 2024년에는 10%를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OLED TV의 점유율이 꾸준히 올라가는 건 거의 확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은 LCD TV를 접할 일이 더 많을 거라는 의미다.
가장 큰 이유는 가격이다. LCD TV는 같은 화면 크기의 OLED TV에 비해 확실히 저렴하다. 그리고 TV용 대형 OLED 패널을 만들어 공급할 수 있는 업체가 많지 않다. 사실상 LG디스플레이가 거의 유일한 TV용 대형 OLED 패널 생산 업체이고 OLED TV 시장을 이끄는 것도 LG전자다. 소니, 샤프, 파나소닉 등의 외부 업체들도 OLED TV를 만들어 팔고 있긴 하지만 이들 역시 LG디스플레이의 패널을 이용한다.
미니 LED 더해 진화의 정점에 선 LCD
상당수 TV 제조사들이 OLED TV에 도전하기 보다는 기존 LCD 개량에 더 비중을 둔 것도 영향을 미쳤다. QLED TV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는 양자점(Quantum dot) 기술을 이용해 컬러 표현 능력을 개선한 LCD TV일 뿐, OLED TV처럼 자발광 화소를 적용한 것이 아니다. 백라이트 역시 여전히 필요로 하는 등, 기존 LCD TV의 특성을 상당 부분 공유한다.
OLED TV 시장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LG전자 역시 LCD에 완전히 손을 놓은 건 아니다. 2017년에 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단위의 미세한 분자구조를 활용해 화질을 향상시킨 LCD 제품인 ‘나노셀(NanoCell) TV’를 선보인 바 있으며, 올해 CES 2021 행사를 통해 나노셀과 양자점을 결합하고 여기에 미니 LED 기술로 백라이트까지 개선한 ‘QNED TV’를 선보였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건 미니 LED 기술이다. 기존 LCD TV의 백라이트용 LED는 기껏해야 TV 1대당 수백에서 수천 개 정도만 탑재하고 있어 수백만 개에 달하는 화면 전체 화소에 섬세한 빛을 뿌려주기는 무리였다. 하지만 이번에 선보인 QNED TV에는 86인치형 8K급 제품 기준으로 약 3만개에 달하는 미니LED를 달아 좀 더 정교한 ‘화소당 빛 제어’가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직접 본 QNED는 OLED보다 좋았을까?
그렇다면 과연 QNED TV는 OLED TV에 맞먹는 제품일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취재진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LG전자 서초 R&D 캠퍼스를 방문, 시연 중인 제품을 살펴봤다. 그곳에서 LG전자의 OLED TV 및 QNED TV, 그리고 나노셀 TV의 화질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실내의 조명 밝기를 조정해가며 다양한 종류의 콘텐츠를 구동해보니 각 TV의 화질 특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QNED TV는 기존의 나노셀 TV 대비 확실히 우수한 컬러 표현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특히 암실에 설치된 TV에서 어두운 배경에서 밝은 점 등을 표시할 때 LCD TV 치고는 상당히 온전한 형태의 ‘블랙’을 표현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대상 주변부로 살짝 빛이 번지는 듯한 LCD의 특성을 완전히 없애진 못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LCD TV 중에서 최상위급의 화질임이 분명하다.
다만, 같은 환경에서 구동한 OLED TV에는 다소 못 미치는 부분도 있었다. QNED TV의 컬러는 이른바 ‘쨍’한 느낌이 강하다. 때문에 얼핏 보기엔 예쁘고 화사하지만, 원본 재현능력 면에서는 OLED TV쪽이 좀 더 우세했다. 그리고 어두운 배경에서 밝은 점을 표시할 때 QNED TV가 기존 나노셀 TV 대비 정확한 표현을 하는 건 사실이지만 OLED의 칼 같은 명암 구분 능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앞서 말한 대로 LCD TV 중에는 최상급이지만 LCD 특유의 구조적 한계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다.
LG의 플래그십은 여전히 OLED
LG전자의 TV 제품군 중에 QNED TV는 어떤 위치에 있을까? LG전자 HE사업본부 이정석 전무는 취재진의 이런 질문에 대해 “OLED TV는 정밀한 표현(Sharp)과 빠른 반응 속도(Speedy), 부드러운 움직임(Smooth), 그리고 얇은 두께(Slim)로 대표되는 이른바 ‘4S’를 강조하는 반면, QNED TV는 우수한 밝기(Bright)와 가격대비 큰 화면(Big), 양자점과 나노셀의 성공적인(Brilliant) 결합, 그리고 기존 LCD의 한계를 넘은 검정(Black) 표현을 실현했다는 ‘4B’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두 제품군은 지향점이 다르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근본적인 성능의 차이는 분명하므로 여전히 LG전자의 플래그십(최상위급) TV는 OLED” 라면서도 “그렇다고 하여 QNED TV를 개발할 때 일부러 성능 차별을 두진 않았으며, LCD TV가 발휘할 수 있는 진화의 정점에 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개발했다”라고 강조했다.
LG전자 입장에서 QNED TV는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제품이긴 하지만, LCD 기반임은 분명하므로 OLED를 능가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점도 숨기지 않은 셈이다. ‘LG QNED’가 타사의 LCD TV군을 상대하는 동안 ‘LG OLED’를 이들보다 높은 급의 자리로 밀어 올리겠다는 그림이 그려진다. 실제로 올해 LG전자는 기존의 OLED를 향상시킨 ‘OLED evo(올레드 에보)’를 선보이는 등 OLED 제품군에 대한 지원도 이어간다.
소비자들은 차세대(OLED)와 궁극의 현세대(QNED) 중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까? 얼핏 보기엔 전자를 선택해야 할 것 같지만 후자 역시 매력이 만만치 않으니 고민이 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