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이시던 아버지는 딸을 여섯 낳은 다음에서야 날 빚어내셨다. 그때가 아버지 나이 마흔하나셨다. 난 그야말로 여자들 틈새에서 전혀 용맹하지 못하게 컸다. 누나들 젖무덤을 베고 잠들곤 했었는데 전혀 그 행복감을 느끼질 못했었다. 밖에 나가면 형이 있는 애들한테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그 당시 대부분 아이들이 팽이를 가지고 놀았는데, 나는 물끄러미 옆에서 지켜볼 뿐이었다. 무심한 아버지가 나의 그런 욕구불만을 아실 턱이 없었고 어머니나 누나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어느날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오셔서 자고있던 내 입에 과자를 물려주시며, 요놈 그릇이 얼마나 큰 지를 가늠하는 설문조사를 하셨다. ‘너 아버지가 백만원 주면 뭐할래?’ 내 대답이 무엇이었을 것 같은가. 한마디로 난 대답했다. ‘팽이 사.’ 일순간 아버진 날 흐릿하게 쳐다 보셨는데, 한숨과 더불어 다시 물으셨다. ‘그 다음엔 뭐할래?’ ‘팽이채 사.’ ‘그 다음엔…’ ‘팽이 사’ ‘그 다음엔…’ ‘팽이채…’
몇번 질문과 대답이 반복되었던 걸로 기억된다. 결국 아버진 한마디 하시며 날 풀어주셨다. ‘가서 자라.’
그 이후로 난 별명이 ‘팽이, 팽이채.’가 되었다. 우스운 얘기지만 그만큼 사내아이로써 그 욕구가 대단했었던 것 같다. 며칠 뒤 아버진 그 팽이와 팽이채를 사다주셨고, 내가 뛸 듯이 기뻐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마 태어나서 처음 느낀그때의 그 짜릿함은 그 이후의 여러번 있었던 엄청난 크기의 희열들도 결코 비교될 수 없을 것이다. 그립다, 그 시절….그립다, 그 추억….아 !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