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친구를 만나러 가요~
9월 초에 스리랑카의 작은 동네인 비빌리(Biblie)에 다녀왔다. 최근 직항편이 생겨 표를 구하기가 좀 나아졌지만 해당 비행편이 스리랑카를 거쳐 몰디브로 가는 노선인지라 여름 휴가철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8월까지 프로젝트 일정이 잡혀서 여름휴가 계획을 두 달 정도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핑계 김에 비빌리를 다녀오게 된 것이다.
#1. 2014년 9월 2일, 만나러 ‘비빌리’로 가는 길
사실 비빌리는 일반적으로 관광객이 찾는 동네는 아니다. 지금까지 만난 현지인들이 나의 여행 계획을 물어봤을 때 ‘비빌리’라고 하면 거기 아무것도 볼게 없는데 왜 가느냐고 매우 궁금해 했고 나는 매번 그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나의 작은 친구를 만나러 가요(මගේ පොදි යනවා බලන්න යනවා)”
9월 3일,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Colombo)’에서 11시간 남짓 기차를 타고 엘라(Ella)까지 갔고, 새벽 6시 로컬버스를 두 번 갈아타는 낯선 루트를 따라 ‘비빌리(Biblie)’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떨리고 중요한 순간이었다.
콜롬보부터 총 이동시간 13시간. 한국에서 가져온 내 짐의 8할인 선물들, 번거롭게도 꾸역꾸역 우쿨렐레를 가져와야 했던 이유인 그 친구를 만나러 간다.
#2. 2012년 11월, 실론섬에 사는 10살 소녀를 알게 되다.
내가 수무두(Sumudu)라는 아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2년 11월, 국제구호개발기구인 ‘월드비전’을 통해 후원 결연 아동을 지정받으면서다. 사실 이전에 같은 기관 및 다른 기관에 여러 번 후원 신청을 했으나 내가 원하는 조건의 ‘스리랑카 아이’를 찾을 수 없어 번번이 실패하다가 가까스로 맺은 친구이다.
2005년부터 2년 3개월 간 한국해외봉사단(KOICA) 소속으로 현지에 파견되어 현지사람들과 부대끼며 함께 호흡했던 나라 스리랑카. 현지인과 어울리며 외국인 치고는 흔치 않게 현지어(싱할라어)를 남부 해안 사투리로 배운 곳, 그래서 괜히 한국 다음으로 생각나는 마음의 고향같은 곳이었기에 기왕이면 그 나라의 아이를 돕고 싶었다.
물질적인 측면을 넘어 아이와 좀 더 정서적인 교감을 할 수 있고, 부족한 어휘로나마 현지어(싱할라어)로 편지 한 통 정성스럽게 써주고 싶어서였다. 그래야 나 역시도 오랫동안 가치 있는 후원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정한 나름의 소신이었다.
그렇게 가까스로 인연이 맺은 이제 12살이 된 내가 ‘딸아이’라고 부르는 12살 수무두(M. P. Gunawardana Sumudu).(사실 저는 아직 미혼입니다.) 이 친구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은 이 아이의 10살, 12살 적 사진 두 장과 “난 한국에서 휴대폰 만드는 엔지니어야, 갈레에서 수영하는 걸 좋아해. 랑카 좋아. 라이스엔 카레에 빠빠담이랑 먹고 싶어”와 같은 초등학교 수준의 싱할라어로 주고 받은 네 통의 편지가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수무두가 랑카에 와서 자기네 마을로 놀러 오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별생각없이 아이가 던진 말 한마디였을 수도 있지만 나 역시 실론섬을 떠난지 7년이 지난 터라 무척 가보고 싶기도 했다. 수무두가 “우리 마을 놀러오세요~”라며 꾹꾹 눌러 쓴 편지가 내 마음에 강한 불을 붙였고, 이내 월드비전 사무소에 현지 방문 신청을 하고 구체적인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3. 2014년 9월 3일, 이제 눈 앞에 다가선 내 ‘ 딸아이’
드디어 떨리는 마음으로 수무두의 집으로 향하던 날. 나를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을까, 나를 무서워하면 어쩌지? 내가 가져온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과 달리 멀리서도 수무두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녀석! 사진빨이 안 받았었구나. 실물이 사진보다 100배는 더 예쁜 아이였다. 도착하자마자 내 목에 나뭇잎 목걸이를 걸어주고 발에 입 맞추는 인사를 해주었는데 정말 쑥쓰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 (스리랑카에서는 왕이나 스승과 같은 분께 신선한 나뭇잎을 드리며 발에 입을 맞추며 존경을 표하는 풍습이 있다고. 참고링크 )
무엇보다 감동이었던 것은 내가 회사 사무실에, 그리고 우리 집에 수무두의 사진을 걸어 놓고 있었던 것처럼 그녀 역시 집에 내 사진을 걸어 놓고 있었던 것. 나만 수무두를 각별하게 생각했던 건 아니었겠구나 하는 마음에 긴장 가득했던 마음이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쓴 편지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아놓은 걸 보여줬다.
이번 여행 내내 가방을 가득 채운 수무두와 남매들에게 줄 옷과 한국 과자, 학용품 등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꺼내 나눠 주었다. 정성을 표현하기에 부족하지 않으면서 위화감이 들지 않도록 과하지 않은 선물이 뭐가 좋을까 무척 고민을 했다. 그런 내 마음이 온전히 전달되길 바랄 뿐이었다.
한국에서 수무두에게 줄 선물을 사러 간 장신구 가게에서 생긴 재미있는 에피소드. 앙증맞은 목걸이와 팔찌를 골라 계산하려고 하니 가게 아주머니께서 “딸 아이 주시려구요?”라고 해서 “아니요, (저 아직 결혼도 안했어요!) 여자… 꼬마… 친구요”라고 했다. 또 옆 카운터 아주머니도 “총각, 패물 사가는 거에요?”고 물으셨던 웃지 못할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수무두와 가족들도 큰 웃음을 터뜨렸다. 수무두에게 그 목걸이와 팔찌를 선물했는데 맘에 들어해서 참 다행이다.
가방 가득 가져온 선물을 나눠 준 후 열심히 연습한 노래를 마음을 가득 담아 불러 주려고 준비해 온 우쿨렐레를 꺼냈다. 스리랑카 봉사 단원 시절 즐겨 부르던 에떠란 위만 뚜린(랑카 사람은 다 알만한 유명한 사랑노래)과 싱할라어로 후렴구를 번역한 이승철의 ‘소리쳐’, ‘자기소개 노래’를 불러주었다.
수무두의 어머니께서도 나를 위해 진수성찬을 준비해 주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매운 감자 카레와 치킨 카레, 빠빠담 등 모두 열거할 수도 없는 풍성한 음식을 준비해 주셨다. 내 위가 좀 더 컸더라면 더 많이 배에 담아왔을 텐데… 그 많은 카레를 한국에 가져갈 방법이 좀체 떠오르질 않아 안타까웠다. 배불리 먹고나서도 어머니께서는 가는 길에 먹으라고 남은 음식들을 모두 싸 주셨다.
수무두네 가족은 ‘월드비전’의 새집 짓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옛날 집 바로 옆에 온 가족이 함께 지은 멋진 새 집에 살고 있었다. 전통 복장을 갈아입고 온 수무두와 친구가 내 주위를 쭈뼛거리며 어슬렁거리길래 무슨 일인가 싶었더니 자기들이 답가로 공연을 준비했다고 한다. 작지만 멋진 뮤지컬 공연을 보여줬는데, 정말 귀여웠다.
드디어 수무두를 비롯한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뭔가 눈시울이 시큰해지고 머리를 한방 맞은 기분이었다. 이번에 오면 당분간 올 일이 없겠지 하고 찾아온 랑카였는데 이렇게 수무두를 직접 보니 머지 않아 다시 보러 와야할 것 같은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처음 수줍어하는 모습과 달리 이제는 다정하게 인사해 주는 친절한 수무두. 나는 이 아이에게 발에 입 맞추는 인사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당황하고 고마웠다.
#4. 2014년 9월 12일, 짧지만 행복했던 하루
그곳에 다녀온 후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근데 우리 수무두 좀 예쁘지 않아?”라는 내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나에게 딸바보의 가능성을 엿보기도 했다. 거짓말같이 생긴 12살 딸아이 수무두는 몇 년 뒤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조만간 수무두에게 우리가 함께 했던 사진을 출력해 편지와 함께 보내야겠다. 이젠 함께 공유한 시간들도 있으니 편지에 쓸 말이 더 많을 것 같다.
සනිප වේවා. සහා නෙවත හමුවිමු.
(건강해야 해. 그리고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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