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친구를 만나러 가요~

2014.09.16 조대득

9월 초에 스리랑카의 작은 동네인 비빌리(Biblie)에 다녀왔다. 최근 직항편이 생겨 표를 구하기가 좀 나아졌지만 해당 비행편이 스리랑카를 거쳐 몰디브로 가는 노선인지라 여름 휴가철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8월까지 프로젝트 일정이 잡혀서 여름휴가 계획을 두 달 정도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핑계 김에 비빌리를 다녀오게 된 것이다.

스리랑카 비빌리 근처 해변의 모습. 맑은 하늘과 초록빛 바다가 눈에 띈다.

#1. 2014년 9월 2일, 만나러 ‘비빌리’로 가는 길

사실 비빌리는 일반적으로 관광객이 찾는 동네는 아니다. 지금까지 만난 현지인들이 나의 여행 계획을 물어봤을 때 ‘비빌리’라고 하면 거기 아무것도 볼게 없는데 왜 가느냐고 매우 궁금해 했고 나는 매번 그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나의 작은 친구를 만나러 가요(මගේ පොදි යනවා බලන්න යනවා)”

비빌리로 향하는 길. 나무와 수풀 사이로 기차가 달리고 있다.

9월 3일,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Colombo)’에서 11시간 남짓 기차를 타고 엘라(Ella)까지 갔고, 새벽 6시 로컬버스를 두 번 갈아타는 낯선 루트를 따라 ‘비빌리(Biblie)’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떨리고 중요한 순간이었다.

비빌리로 배낭을 매고 이동하는 모습. 작은 자동차와 길거리 상점이 보인다.

콜롬보부터 총 이동시간 13시간. 한국에서 가져온 내 짐의 8할인 선물들, 번거롭게도 꾸역꾸역 우쿨렐레를 가져와야 했던 이유인 그 친구를 만나러 간다.

#2. 2012년 11월, 실론섬에 사는 10살 소녀를 알게 되다.

내가 수무두(Sumudu)라는 아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2년 11월, 국제구호개발기구인 ‘월드비전’을 통해 후원 결연 아동을 지정받으면서다. 사실 이전에 같은 기관 및 다른 기관에 여러 번 후원 신청을 했으나 내가 원하는 조건의 ‘스리랑카 아이’를 찾을 수 없어 번번이 실패하다가 가까스로 맺은 친구이다.

월드비전을 통해 '수무두'와 주고 받은 편지와 수무두의 사진이 보인다.

2005년부터 2년 3개월 간 한국해외봉사단(KOICA) 소속으로 현지에 파견되어 현지사람들과 부대끼며 함께 호흡했던 나라 스리랑카. 현지인과 어울리며 외국인 치고는 흔치 않게 현지어(싱할라어)를 남부 해안 사투리로 배운 곳, 그래서 괜히 한국 다음으로 생각나는 마음의 고향같은 곳이었기에 기왕이면 그 나라의 아이를 돕고 싶었다.

물질적인 측면을 넘어 아이와 좀 더 정서적인 교감을 할 수 있고, 부족한 어휘로나마 현지어(싱할라어)로 편지 한 통 정성스럽게 써주고 싶어서였다. 그래야 나 역시도 오랫동안 가치 있는 후원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정한 나름의 소신이었다.

UNESCO에서 지정한 스리랑카의 세계문화유산 7곳 하나인 Galle Fort의 풍경. 파란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오래된 시계탑이 보인다.

그렇게 가까스로 인연이 맺은 이제 12살이 된 내가 ‘딸아이’라고 부르는 12살 수무두(M. P. Gunawardana Sumudu).(사실 저는 아직 미혼입니다.) 이 친구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은 이 아이의 10살, 12살 적 사진 두 장과 “난 한국에서 휴대폰 만드는 엔지니어야, 갈레에서 수영하는 걸 좋아해. 랑카 좋아. 라이스엔 카레에 빠빠담이랑 먹고 싶어”와 같은 초등학교 수준의 싱할라어로 주고 받은 네 통의 편지가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수무두가 랑카에 와서 자기네 마을로 놀러 오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별생각없이 아이가 던진 말 한마디였을 수도 있지만 나 역시 실론섬을 떠난지 7년이 지난 터라 무척 가보고 싶기도 했다. 수무두가 “우리 마을 놀러오세요~”라며 꾹꾹 눌러 쓴 편지가 내 마음에 강한 불을 붙였고, 이내 월드비전 사무소에 현지 방문 신청을 하고 구체적인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3. 2014년 9월 3일, 이제 눈 앞에 다가선 내 ‘ 딸아이’ 

스리랑카 소녀 수무두가 환영의 인사로 발에 입을 맞추는 사진

드디어 떨리는 마음으로 수무두의 집으로 향하던 날. 나를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을까, 나를 무서워하면 어쩌지? 내가 가져온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과 달리 멀리서도 수무두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녀석! 사진빨이 안 받았었구나. 실물이 사진보다 100배는 더 예쁜 아이였다. 도착하자마자 내 목에 나뭇잎 목걸이를 걸어주고 발에 입 맞추는 인사를 해주었는데 정말 쑥쓰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 (스리랑카에서는 왕이나 스승과 같은 분께 신선한 나뭇잎을 드리며 발에 입을 맞추며 존경을 표하는 풍습이 있다고. 참고링크 )

꽃목걸이를 건 채 웃고 있는 조대득 주임 연구원(왼쪽)과 수무두(오른쪽)

무엇보다 감동이었던 것은 내가 회사 사무실에, 그리고 우리 집에 수무두의 사진을 걸어 놓고 있었던 것처럼 그녀 역시 집에 내 사진을 걸어 놓고 있었던 것. 나만 수무두를 각별하게 생각했던 건 아니었겠구나 하는 마음에 긴장 가득했던 마음이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쓴 편지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아놓은 걸 보여줬다.

벽에 사진과 그림이 걸려져 있다.

이번 여행 내내 가방을 가득 채운 수무두와 남매들에게 줄 옷과 한국 과자, 학용품 등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꺼내 나눠 주었다. 정성을 표현하기에 부족하지 않으면서 위화감이 들지 않도록 과하지 않은 선물이 뭐가 좋을까 무척 고민을 했다. 그런 내 마음이 온전히 전달되길 바랄 뿐이었다.

스리랑카 소녀에게 선물인 티셔츠를 건네는 모습

한국에서 수무두에게 줄 선물을 사러  간 장신구 가게에서 생긴 재미있는 에피소드. 앙증맞은 목걸이와 팔찌를 골라 계산하려고 하니 가게 아주머니께서 “딸 아이 주시려구요?”라고 해서 “아니요, (저 아직 결혼도 안했어요!) 여자… 꼬마… 친구요”라고 했다. 또 옆 카운터 아주머니도 “총각, 패물 사가는 거에요?”고 물으셨던 웃지 못할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수무두와 가족들도 큰 웃음을 터뜨렸다. 수무두에게 그 목걸이와 팔찌를 선물했는데 맘에 들어해서 참 다행이다.

분홍색 목걸이를 걸고 웃고 있는 수무두

가방 가득 가져온 선물을 나눠 준 후 열심히 연습한 노래를 마음을 가득 담아 불러 주려고 준비해 온 우쿨렐레를 꺼냈다. 스리랑카 봉사 단원 시절 즐겨 부르던 에떠란 위만 뚜린(랑카 사람은 다 알만한 유명한 사랑노래)과 싱할라어로 후렴구를 번역한 이승철의 ‘소리쳐’, ‘자기소개 노래’를 불러주었다.

우쿨렐레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조대득 연구원과 웃으며 경청하는 스리랑카 사람들

수무두의 어머니께서도 나를 위해 진수성찬을 준비해 주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매운 감자 카레와 치킨 카레, 빠빠담 등 모두 열거할 수도 없는 풍성한 음식을 준비해 주셨다. 내 위가 좀 더 컸더라면 더 많이 배에 담아왔을 텐데… 그 많은 카레를 한국에 가져갈 방법이 좀체 떠오르질 않아 안타까웠다. 배불리 먹고나서도 어머니께서는 가는 길에 먹으라고 남은 음식들을 모두 싸 주셨다.

스리랑카 식으로 차려진 식탁. 한국과는 다른 쌀밥과 바나나가 눈에 띈다.

수무두네 가족은 ‘월드비전’의 새집 짓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옛날 집 바로 옆에 온 가족이 함께 지은 멋진 새 집에 살고 있었다. 전통 복장을 갈아입고 온 수무두와 친구가 내 주위를 쭈뼛거리며 어슬렁거리길래 무슨 일인가 싶었더니 자기들이 답가로 공연을 준비했다고 한다. 작지만 멋진 뮤지컬 공연을 보여줬는데, 정말 귀여웠다.

뮤지컬 공연을 선보이는 스리랑카 아이들의 모습

드디어 수무두를 비롯한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뭔가 눈시울이 시큰해지고 머리를 한방 맞은 기분이었다. 이번에 오면 당분간 올 일이 없겠지 하고 찾아온 랑카였는데 이렇게 수무두를 직접 보니 머지 않아 다시 보러 와야할 것 같은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처음 수줍어하는 모습과 달리 이제는 다정하게 인사해 주는 친절한 수무두. 나는 이 아이에게 발에 입 맞추는 인사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당황하고 고마웠다.

손을 흔들며 작별의 인사를 하는 스리랑카 사람들

#4. 2014년 9월 12일,  짧지만 행복했던 하루

그곳에 다녀온 후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근데 우리 수무두 좀 예쁘지 않아?”라는 내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나에게 딸바보의 가능성을 엿보기도 했다. 거짓말같이 생긴 12살 딸아이 수무두는 몇 년 뒤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조만간 수무두에게 우리가 함께 했던 사진을 출력해 편지와 함께 보내야겠다. 이젠 함께 공유한 시간들도 있으니 편지에 쓸 말이 더 많을 것 같다.

සනිප වේවා. සහා නෙවත හමුවිමු.
(건강해야 해. 그리고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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