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와 친구 이야기

2012.03.29 LG전자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보충수업도 빼먹고 L이라는 키가 작았던 친구 녀석과 과천에 있는 대공원에 놀러간 일이 있었다. 고릴라 관을 지나가다 너무도 덩치가 큰 고릴라를 보게 되었다. “그랜드 고릴라라는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우리는 거대한 모습에 까만 가죽 탈을 쓴 것 같은 그 큰 고릴라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장난기 많았던 L은 철장 안에 갇혀있는 그랜드고릴라가 움직이지 않자 먹고 있던 과자를 던져 명중시키는 것이 아닌가.

저러면 안 되는데

그런데도 그랜드고릴라는 표정 하나 변함이 없이 앉아있었다. 반응이 없자 L은 이번에는 혀를 내밀어 놀리며 심지어는 철조망사이로 손을 넣어 고릴라의 털을 잡아당기는 것이 아닌가.

저러면 정말 안 되는데

이런 생각도 잠시고릴라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덩치 큰 고릴라가 아닌 아까부터 꼭대기에 있었던 작은 고릴라였다. 직각으로 서서히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목표물을 조준하러 가는 오락게임처럼.

제는 왜 저래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다음에 일어날 일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한 우리에 같이 있는 것으로 보아 어미와 새끼의 관계임을 직감하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내 느낌이 적중이라도 하듯 어미를 괴롭히는 L의 머리 바로 위에서 멈춘 새끼 고릴라의 다음 행동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껌을 씹듯이 입을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왜 저러지

이런 궁금함도 금세 하는 소리와 함께 풀렸다. 물컹하게 뭉친 액체 같은 것이 L의 머리 뒤로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새끼 고릴라의 침이었다.

빗나갔다

세상에 이런 일이

아무 말도 L에게 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해야겠다. 이 모든 일이 나에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곧이어 다시 조준에 들어간 새끼 고릴라는 위치를 고치고 또다시 우물우물

새끼 고릴라의 2차 공격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명중이다

으악

물컹한 액체는 이번에는 L의 머리카락을 보기 좋게 스쳤다.

이제야 이 모든 상황을 알게 된 L의 얼굴 표정은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붉게 변한 그 얼굴을 말이다. 고릴라에게 침을 맞아서인지 아니면 황당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L이 충격에 빠진 것은 분명했다. 하기야 옆에 있던 나에게도 그것은 충격적인 사건이었으니까.

이 장면이 우리들만의 것이 아니었음은 곧 알 수 있었다. 주위에는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창피함으로 부들부들 떠는 L의 마음도 모르고 어느 아저씨는 비디오촬영까지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당시에는 폭소비디오 프로그램이 텔레비전에서 유행하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나는 분명 이것이 1등을 차지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이 장면은 텔레비전에서는 볼 수 없었다. 물론 L은 전국적인 망신을 당하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지금도 동물들이 나오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 나는 가끔 그때의 장면이 생각난다. 침을 뱉는 새끼 고릴라와 어미의 무표정한 표정, 그리고 고릴라에게 침을 맞고 화가 났던 L의 모습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엄마 괴롭히지 마

뉴스레터 구독하기 | 최신 트렌드를 빠르게 만나보세요!

LiVE LG 뉴스레터 구독하기

LiVE LG의 모든 콘텐츠는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일부 글과 이미지는 저작권과 초상권을 확인하셔야 합니다.운영정책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