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2013.12.11 박정선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그런 순간들이 있다. 지금 직장이 꽤나 못마땅해 옮기고 싶다거나, 혹은 안정적인 직장에 있다 하더라도 왠지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그리하여 많은 이들은 이직을 꿈꾸고, 퇴사를 하곤 한다. 문제는 항상 끝마무리이다.

막바지가 다 되어서 자신의 밑바닥을 드러내며 그 동안의 정까지 갉아먹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남들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던 말들을 상사에게 당당히 털어놓고 영웅처럼 사라지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퇴사를 하고 난 지 한참이 되어서야 “어? 그 친구 그만뒀어요?”라며 반문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퇴사라는 과정을 겪으며 까딱하면 껄끄러워지거나 어그러질 수 밖에 없는 관계들. 하지만, 단순히 커리어를 떠나 그 관계들 속에서 함께한 시간들이 자기 삶의 일부분이었음을 떠올린다면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 마무리는 중요할 테다.

[박정선의 살다보니] ⑨ 퇴사와 이별 사이, 그리고 진심

어쩌다 보니 8년이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새로운 업계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한 달쯤 전에 미리 얘기를 하고서는 마무리를 했다. 경쟁 업체로 옮기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업계로 이직을 하다 보니 한번쯤 만류하시긴 했지만, 보내주는 분들의 시선도 다행히 격려를 해주는 분위기였다. 덕분에 다른 이들에 비해서 쉽게(?) 퇴사를 할 수 있었던 건 사실이다.

캐리어를 끌고 회사를 떠나는 남자의 어두운 모습이다.

사실 퇴사나 이직이라는 게 좀 그런게 있지 않나. 아예 안 잡아주면 ‘내가 그렇게 쓸모 없는 인간이었나?’ 싶어서 섭섭하고, 너무 잡으면 질척대서 싫고.어딘가 이별을 앞둔 연인 사이의 밀당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연애로 따지자면 내가 분명 헤어지자고 했는데, 상대가 너무 쿨하게 ‘OK’ 이러면 빈정 상하고, 너무 눌러 붙으면 ‘얘는 대체 왜 이러나.’ 싶어지는 거다. 그리고, 그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에 따라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지, 천하에 없는 나쁜 놈으로 남을 지가 결정된다.

결국 헤어지는 순간, 마지막의 순간에 어떻게 자신의 진심을 전하는가가 그 사람(혹은 동료)와 함께했던 지난 시간들에 대한 기억까지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퇴사 이벤트’를 해보았습니다.

뭐 저런 복잡한 생각들을 가지고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8년 동안 다니면서 아쉬웠던 순간들이 바로 함께 일하던 이들이 소리 소문 없이 퇴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주까지 함께 일했던 사람인데, 몇 주가 지나서야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그만두었다는 얘기를 전해 듣게 되거나, 퇴사 당일에서야 그 소식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왠지 그렇게 떠나기는 싫었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기로 했다. 우선 인사팀에 문의해서 전직원 명단을 받았다. 명단에 빠져 있는 파견직이나 프리랜서, 어시스턴트 친구들의 이름들은 부서별로 찾아다니며 리스트를 모았다. 그렇게 모았는데도 어딘가 허전했다. 내가 회사를 다니는데 도움을 주신 분들이 어디 우리 회사 사람들뿐일까 싶었다. 다시 또 돌아다녔다. 사내에 입주해 있는 외부 관계사들을 비롯하여 청소 아주머니와 경비 업체 직원들, 구두닦이 아저씨에 이르기까지 내가 이 회사에서 일을 하는 동안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셨던 분들의 이름까지 다 담아 명단을 만들었다.

퇴사 하루 전날 퇴근 길, 회사 1층에 있는 사내 카페에 명단을 붙이고 엘리베이터에 퇴사 포스터를 만들어 붙였다. ‘한 분 한 분 인사 드리지 못하고 떠나는 대신, 카페에 커피 한 잔씩 맡겨두었으니 추운 날 한 잔씩 드시라’고. 포스터는 아트팀에서 디자인해 주었고, ‘왜 이름 물어보러 다니냐’고 궁금해하시던 인쇄업체에서는 프린트를 공짜로 해 주었고, 카페 사장님은 자기가 손해 볼지도 모르는 가격으로 커피값을 싸게 깍아주고. 떠나는 마당에 또 한 번 그렇게 도움을 받았다.

박정선 기자가 잡지사를 떠나며 기획한 "이 가을 그 놈이 간다" 퇴사 이벤트 포스터 이다.

인생이라는 인과율의 세계

그냥 함께 일하던 분들에게 인사나 할까 싶어한 일인데, 다음 날 마지막 출근을 했더니 반응이 너무 뜨거워 괜히 민망할 지경이었다. 얼굴로만 알던 이들이 먼저 인사를 해오고, 청소 아주머니께서는 “어이구, 총각. 오늘까지만 나오는 겨?”라며 안부를 물어온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어찌 전화 번호를 알아내어선 ‘커피 잘 마시겠다’며 ‘고맙다’는 문자가 쉴새 없이 울린다.(물론 그 와중에 떠나는 마당이라고 ‘이미지 세탁’하는 거냐는 예리한 질문에 뜨끔하기도 했다.)

사회 생활에서 마주하는 인간 관계라는 것들이 그렇다. 짧게 보기에는 단편적이라 쉽게 간과하지만, 그 관계들도 긴 시간 속에서는 하나의 인과율로 이어져 있지 않을까. 꼭 나중에 무슨 득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 둘 뿌려둔 마음들이 언젠가는 그렇게 전해지고 전해져서 언젠가 다시 만날 때 서로에게 따뜻하게 인사할 수 있는 여지가 되어 줄 수 있다면, 비록 떠나는 순간에라도 그 함께한 시간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건 필요한 일이 아닐까.

그 마음을 전하는 게 그게 꼭 퇴사 전에 전 직원들에게 커피 한 잔 다 돌려야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야 사실 그렇게 큰 회사가 아니었고, 사내 카페의 커피값이 꽤나 저렴하고 뭐 이런저런 이유로 생각할 수 있었던 이벤트였을 뿐이다. 사실 그게 커피든, 츄파춥스 하나든 아니면 정성 들여 쓴 이메일이나 카드든 그게 무에 그리 중요할까. 다만, 그대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고, 고마웠다고 전하고자 하는 마음만 보여줄 수 있다면 충분할 테니 말이다.

고마움을 전한다는 것의 의미

회사가 정말정말 지긋지긋해서, 혹은 상사가 지독히 미워서 등등 안 좋은 이유로 회사를 떠나게 된다면 저런 마음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 나만 해도 8년이란 그 시간 동안 좋은 일도 있었지만 그 안에는 일주일 동안 소파에서 쪽잠 자가며 ‘이러다 죽겠다’ 싶게 야근했던 순간들도 있고, 일 때문에 서로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엉터리 상사에게 꼬장꼬장 대든다고 욕 먹기도 하고, 뭐 그런 시간들도 오롯이 포함되어 있을 터였다. 그러니 왜 싫은 사람 하나 정도 없겠는가. 하지만 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그렇게 싸워가면서라도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해왔기에 나도 덩달아 밥벌어 먹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하면 그 또한 고마운 일일 것이다.

떠나는 마당에 회사의 일로 굳이 누군가를 미워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그로 인해 스스로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어쩌면 그로 인해 그만두기에 또 다른 삶을 접할 기회를 얻게 된 걸지도 모르는 일이니까.(그리고 사실 그렇게 미움 산 인간들은 결국 알아서 다 망하게 마련이다.) 무엇보다도 그 미움이 자신이 그곳에서 보내온 시간들을 부정하게 만들다면, 해서 스스로를 형편없는 인간으로 느껴지게 한다면, 퇴사를 하고서도 여전히 그 곳에 매여있는 것밖에 안 될 것이다.

그러니 함께한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것은, 어쩌면 그들에 대한 고마움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 동안 회사 생활을 하면서 쌓인 내 안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덜어내고, 지금 다시 출발하고자 하는 자신을 한층 더 가볍게 만들어주는, 그래서 더 즐겁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끔 해주는 그런 작은 의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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