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현의 소통철학관] 고백은 해야할까?

2012.05.15 하지현

“할 얘기 있다면서?”
“어…그랬지”
“빨리 말해. 내일 아침에 보고서 준비해야해서 일찍 일어나야해”
“그래? 그럼..그럼 다음에 하지 뭐”
“뭔데, 네가 꼭 오늘 만나자고 해서, 다른 약속도 미루고 온건데”

 

영수와 동미는 대학교 동아리 친구다. 졸업후 각자 회사에 들어가서도 모임 때마다 만나고, 가끔 따로 만나기도 하는 사이다. 그러던 중 영수가 갑자기 동미에게 연락을 해 오늘 만난 것이다. 그런데, 별 말이 없이 그동안 사는 얘기만 주고받으면서 시간을 보내자 오후 약속이 있는 동미가 영수를 재촉했다. 영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 딴게 아니라, 이번 달 말에 상준이 결혼하잖아.”
“그거야 알지. 왜?”
“그전에 같이 한 번 봐야하잖아. 그거 내가 준비하기로 했거든. 같이 하자고”
“아, 그래? 재미있겠네. 야 그런건 그냥 전화로 하지. 왜 따로 만나자고 한 거야? 알았어. 그럼 날짜랑 장소는 다시 잡자고, 먼저 일어날게. 밥은 네가 사”

 

곰인형 사진

영수는 사실 동미에게 사귀자는 고백하려고 했었다. 오랫동안 친구 사이였지만, 영수는 어느날부터,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동아리 생활을 할때부터 호감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고백을 해서 사귀던지 말던지 양단간에 결정을 내렸으면 했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하기도 했다. 지금 동미가 사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영수를 그냥 좋은 친구, 남자가 아닌 친구로만 여기고 있다면 그나마 유지하던 편한 친구 관계조차도 어색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끙끙 앓다가, 어젯밤에 술 기운에 전화를 해서 동미에게 만나자고 우긴 것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백의 타이밍에 대해서, 또 고백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마음고생을 한다. 소통을 하는데 있어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하느냐 는 것은 ‘아트’의 영역이 아닐 수 없다. 한 번 입밖으로 나와버린 말은 도로 담을 수 없기 때문에 고백을 하기 전에 이게 평생의 쪽팔림이 될 부끄러운 일이 될지 말지 망설이게 된다. 게다가 거절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망설임에 한 몫을 한다.

사람들은 비밀을 안고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는 한편으로는 솔직해져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본심을 수면 위로 밀어올리지만, 동시에 그랬다가 거절을 당하는 것 같은 부정적 반응을 감당하지 못할 상황이 되어버리면 그나마 이어지던 관계조차 엉망이 되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억지로 그 수면위의 본심을 깊숙이 밀어넣는다.

고백의 타이밍은 ‘아트’의 영역

이때 어떻게 해야할까? 이런 심리실험이 있다. 자기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그 선택이 틀렸다는 것이 밝혀졌을 때의 아픔과 선택을 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행동에 옮기지 않아서 생기는 아픔 중 어느 것이 더 괴롭고 오래 가느냐에 대한 연구였다. 결과는 단기적으로는 틀린 선택에 대한 아픔이 크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틀린 선택에 대한 아픔은 오래가지 않고 사라지지만, 선택을 하지 않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는 경험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고 아픔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었다.

결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단기적으로는 자신의 선택이 틀렸고, 이로 인한 후폭풍 때문에 여러 가지 곤욕을 치른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결과다. 그러나, 최소한 그 선택의 답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게 된다. 그러므로 다음에는 그 가능성은 더 이상 인생의 옵션에 들어가지 않게 된다. 그렇지만 만일 여러 이유로 행동에 옮기지 않게 되는 경우에는 이후 어떤 선택을 해야할 때, 또 비슷한 상황에 뭔가를 결정을 해야할때마다 ‘만일 그때 그 일을 했더라면’이라는 고민이 생각의 가능성의 하나로 들어가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결정적인 어떤 시점에 하지 못한 행동에 대한 기억은 미련으로 남아 오랫동안 사람을 괴롭힌다. 특히 자신의 삶이 현 시점에 잘 풀리지 않을수록, 과거로 눈을 돌려 자꾸 어떤 시점의 하지 못한 행동을 놓고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된다.

전자의 경우 당장은 아프지만, 최소한 그 다음부터는 그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부수입이 있다. 일종의 수업료를 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후자의 경우는 시간이 지날수록 여전히 그때의 상황이 머릿속에 남아 옵션의 가짓수를 늘려놓기 때문에 현재의 삶이 복잡해지는데 기여를 한다. 물론 현명함이란 해야만 할 것 같은 욕망을 참는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위의 영수의 경우와 같은 상황이라면, 나는 고백을 하고 만에 하나 거절을 당하더라도, 고백하지 못하고,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사는 것 – 최근 개봉한 영화 ‘건축학 개론’을 보라 – 보다 훨씬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싶다. 더욱이 고백을 했을 때 잘 될 확률이 반 이상이라면 더욱 더 해봐야 할 일이다.

픽업아티스트들의 비결은 100 퍼센트 성공하는게 아니라, 남들보다 많은 시도를 하면서 노하우를 익히고, 거절에 둔감해지는 것이라고 한다. 실패할까봐 두려워 뚜껑을 아예 열어보지 못한다면, 그 안에 뭐가 있을지 알 수 없는 채 지내면서, 영원히 벌어지지도 않을 가능성만 혼자 상상하면서 현실의 나를 갉아먹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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