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현의 소통 철학관] 초코파이를 먹으면 정이 쌓일까?
우리는 오 헨리의 단편소설들을 사랑한다. 마지막 잎새, 크리스마스 선물, 추수감사절의 두 신사, 경찰관과 찬송가등..누구나 한 번 쯤은 그의 단편소설집을 읽어보았을 것이다. 수 많은 구미의 소설가중에서 특히 오 헨리를 우리는 특히 더 사랑하는 것 같다. 가끔 사람들에게 생각나는 소설이 있냐고 물어보면 마지막 잎새를 답하는 사람이 물론 가장 많지만, 단연코 ‘크리스마스 선물’을 대답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물론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과 헷갈려 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나는 외국인으로부터도 같은 대답이 올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마 그들의 대답은 다르지 않을 까 싶다. 같은 소설을 보더라도 자기가 사는 문화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소설을 사랑하는 이유를 나는 우리 사회의 ‘정(情)’문화의 진수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 아는 얘기지만 잠깐 다시 생각해보자.

주인공 짐과 델라는 찢어지게 가난한 젊은 부부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서로에게 선물을 해 주고 싶지만 돈이 없었다. 그냥 “사랑해”라고 말만 주고받기엔 미흡했다. 고민 끝에 남편 짐은 집안 대대로 내려온 금시계를 팔아 아내 델라에게 머리빗을 샀다. 크리스마스 날 아내에게 이 선물을 주자 데라는 웃으면서 그녀의 머리두건을 풀렀다. 탐스러웠던 머리채가 다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짐에게 선물이라면서 시계줄을 건내줬다. 시계를 팔아버린 짐에게 이 선물은 소용이 없는 물건이었다. 두 사람 모두 쓸모없는 물건을 받은 셈이었지만, 둘은 가장 아끼는 물건을 팔아 상대의 가장 아끼는 물건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물건을 산 그 마음씀씀이에 서로의 사랑의 깊이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참으로 훈훈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게 우리의 정문화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지금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보자. 여기서 ‘사랑’을 ‘정’으로 치환해서 보면 정이 드는 과정의 중요한 비법이 숨어있다.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정때문에 웃고, 또 정때문에 울 일이 많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무슨 오해가 있나보다’라고 여기기보다 특히 그 사람과 나름 정이 들은 관계라고 여기고 있었다면 먼저 서운한 감정이 들고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는 억울한 마음이 먼저 솟아올라서 이후에 아무리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해명을 듣고, 머릿속으로는 이해가 가게 된다고 해도 쉽사리 그 서운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아, 마음의 아픔이 쉽사리 낫지 않는다.
이런 일을 여러번 경험한 사람은
“난 쉽게 정을 주지 못해. 정에 헤프게 살았더니 너무 상처를 많이 받았어”
라고 말하곤 한다. 물론 그런 사람일수록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것이 나의 경험이기는 하다. 또 조직안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생겼다. 서구적 사고방식이라면 문제를 일으킨 정도에 따라서 징계를 하거나, 수준이 지나치면 조직에서 내치면 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그 놈의 정‘때문에 남이 아닌 ‘우리’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감싸안고 가려고 한다. 말썽을 많이 일으킨 동료가 도리어 마음에 오래 남는 것이, 미운정이 고운 정보다 앞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이 한 번 들고 나면 우리 사회의 조직은 사람문제를 쉽게 해결하지 못한다. 나쁜 점은 그때문에 일이 커지고, 조직전체가 문제가 되는 일이 벌이진다는 것이고, 좋은 점은 고의가 아닌 한 번의 실수에 대해서는 만회할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런 점때문에 우리는 어떻게든 관계와 소통안에서 사람들사이에 정이 빨리 깊게 들게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절대 시간이 든다는 것이다. 정이 드는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마치 물감으로 옷을 염색하는 것과 같이. 그래서 물들다와 같은 정은 ‘든다’라는 동사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빨리 정이 들기 위해 노력을 하는데, 여기에 몇 가지 팁이 있다.
먼저, 상대방이 모르게 그를 도와야한다.
최소한 남들이 모르게 조용히 상대를 도와야한다. 대놓고 광고하면서 상대를 도우면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자존심에 금이 간다. 고마운 마음보다 자신의 민망함이 더 크게 작동해 버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이 이용당한다고 오해를 하기 쉽다.
둘째, 이왕이면 도움을 주는 사람의 희생이 뒤따라야한다.
주말을 희생해서 당직을 대신 서주는 것과 같은 작은 일에서부터 융자를 하는 친구의 보증인이 되는 것까지 다양하다. 돈이 많은 사람이 빌려주는 돈보다, 형편이 뻔한 친구의 작은 도움이 훨씬 더 고맙고, 오래 기억에 남는 것도 같은 이치다.
셋째,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어야한다.
“내가 이번 주에 당직을 서주니, 네가 다음 달에 대신 서줘.”라고 하면서 일종의 거래가 되는 도움주기를 하는 것은 정을 쌓는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는 다음달에 당직 부탁을 할 일이 있다 하더라도, 일단 그 시점에는 기브 앤 테이크 정신을 꾹 참아야한다. 그냥 네가 좋고, 친하니까 해주는 거야라는 마음으로 흔쾌히 들어주는 것이 더 나은 관계맺기 전략이다. 처음에는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 같아 개운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조건없는 주고받음의 관계가 맺어져야 실제로 정말 긴급히 도움이 필요할 때 그동안 쌓아놓은 정이라는 인간관계의 크레디트를 한 번에 인출할 수 있다.
이 모든 조건을 ‘크리스마스 선물’은 갖추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 모르게 선물을 준비했고, 가장 아끼는 물건을 파는 희생을 치뤘다. 더 나아가 상대도 그만큼 좋은 것을 줄 걸 바라고 준비를 한 것이 아니었다. 이 상황을 글로 읽는 독자는 정이 카지노에서 잭팟이 터져 벨이 울리면서 코인이 우수수 쏟아지는 것처럼 쌓이는 것이 들리지 않았을까? 이렇게 정을 차근차근 쌓아서 서로에게 깊이 스며들게 하는 것이 우리문화에서 관계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정이 드는 과정은 보이지 않고, 그 양을 평가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절대절명의 순간이 왔을때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이 정으로 맺어놓은 인간관계의 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관계를 맺고 유지해나가면서 ‘정’에 대한 생각을 잊지 않고 살아가야겠다. 우리는 매일 적은 액수의 보험금을 다수의 통장에 불입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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