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림의 일상공작소] 건축학개론, 그리고 배트맨
건축학개론을 봤다.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 깔린 예고편을 봤을 때, 이것만은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3 시절 몇 개월 동안 내 CD플레이어의 자리를 차지했던 음반이라는 추억이 크게 작용했고, 어설펐던 20대 시절을 스크린에서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기 때문이다. 건축학개론에 대한 기대를 주위에 이야기하자, 먼저 본 지인들은 여자친구나 아내와 같이 보지 말라는 충고를 했다.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영화를 본 후 그 남자들이 왜 그런 충고를 했는지를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건축학개론, 기억의 습작
영화에 대한 남성과 여성의 감상평이 극단적으로 다르다는 것도 재밌는 부분이었다. 여성은 결혼을 앞둔 은채(고준희 분)에 대한 동정과 함께 승민(엄태웅 분)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고, 남성들은 말로는 그에 동조하지만 아마 가슴으로는 승민이라는 남자에게 눈물 한 방울 흘려줬으리라. 예뻤지만 어설펐고, 쿨하고 싶었지만 찌질했던 당시 남자들의 첫사랑 이야기 또는 자신의 경험을 지금 옆에 있는 여성에게 애써 숨기는 남자들을 상상하니 귀엽다는 생각도 든다. 개인적인 감상으로 말하자면 나는 승민보다는 친구인 납득이가 더 마음에 들었다. 아마 그 당시 내 모습을 떠올리면 승민보다는 납득이에 더 가까운 포지션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물론 곁에 싱숭이나 생숭이가 있진 않았지만 말이다.
누구나 첫사랑에 대한 드라마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의 경우는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들었던 그들의 첫사랑 추억담은 씁쓸하거나 아프거나 그렇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늘 웃는 얼굴이었다.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경험은 무엇이든 소중하다. 친하게 지내는 동생작가가 마음에 품은 사람이 있는데, 고백했다가 잘 안되면 부끄러워질 것 같아 망설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게 부끄러울 것 같아 말하지 못하고 세월이 지나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 그런 기억하나 없다는 사실에 자신에게 더 부끄러워질테니 고백하라고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응원하고 싶어야 한다. 그래서 응원하고 싶다.
건축학개론으로 시작된 추억놀이는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8개월 전 예약했던 장난감이 도착했다는 전화와 함께 사라졌다.
어른들의 장난감, 배트맨 피규어
누군가 남자가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도 바뀌는 건 장난감 가격뿐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한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토록 의표를 찌르는 말이라니.
비틀주스(팀 버튼, 1988)로 팀 버튼의 세례를 받은 후 그의 행보를 주목하게 되었다. 유년 시절, 상상력의 날개를 달아 준 사람 중 한 명인 팀 버튼의 작품 중 배트맨은 그 당시 나에게 큰 충격을 준 작품이었다. 정의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어찌됐든 이기는 것이 정의라는 생각을 심어준 많은 헐리우드 히어로물 영화에 싫증이 날 무렵 전혀 히어로라는 생각이 안 드는 ‘마이클 키튼’의 캐스팅부터 고약한 성격의 배트맨, 그리고 언제나 실망시키는 일이 없었던 팀 버튼의 기괴한 고딕스타일의 이 영화는 팀 버튼 자신에게는 부와 명예를 안겨준 작품이었고 나에게는 히어로물도 이렇게 생각을 많이 던져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공부가 된 작품이었다. 조커역으로 출연한 잭 니콜슨이야 두말하면 입 아프다. 개인적으로는 배트맨 리턴즈(한국 개봉 당시 제목 : 배트맨2)가 더욱 팀 버튼스러워 좀 더 좋아하지만, 지금 봐도 일정한 격을 갖춘 영화로 오랜 시간 기억된 작품이었다.
이런 나에게 배트맨 피규어의 출시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장난감이 좋은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역시 그 당시를 추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건축학개론부터 배트맨까지 어쩐지 계속 추억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 벚꽃 화사한 봄날에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지만, 뭐 어떤가. 오늘 하루쯤이야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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