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일이라는 게 참 희한하다. 오늘 일을 많이 했다고 해서 내일 일이 적은 경우는 거의 없다. ‘일’을 만들어 내는 공장 같은 게 있기라도 한 마냥 아침마다 책상 위에 일감이 뚝뚝 올라와 있다. 어느새 그 속도감에 파묻히다 보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쳐내기’에 급급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박정선의 살다보니] ㉑ 닥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막상 닥쳐서 ‘아, 말렸다.’ 싶은 경우는 두 가지 정도다. 하나는 ‘어떻게 이 꼴이 될 때까지 두고 있었을까?’ 하며 스스로가 한심해질 정도로 준비하지 못한 경우, 또 하나는 분명히 챙길 만큼 챙겼다 싶은데도 막상 마지막 즈음에 도달하면 어딘가 아쉬운 경우다. 그 와중에 알게 모르게 ‘닥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미덕 같은 게 있다.
안 될 일도 ‘미루는 건’ 좋지 않다
사실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는 일의 경우 절반 정도는 자의(?)에 의한 것이다. 자수하자면 ‘미루기 병’이 좀 있다. 그러니까 하기 싫은 것은 어떻게든 끝까지 안하고 버티는 거다. 일종의 아집이다. 나중에 대책 없을 걸 뻔히 알면서도 일단 손을 놓고 있는다. 원래 세상 일이나 회사 일이라는 게 이래저래 수시로 바뀌기 마련이니, 그렇게 뭉개다 보면 알아서 없어지는 일들이 태반이긴 하다.
문제는 그렇게 없어지지 않는 나머지 절반이다. 하기 싫더라도 미리 조금씩 해뒀더라면, 어떻게라도 될 일들이었는데, 싫다고 뭉개다가 막바지에 어떻게든 맞추려고 애를 쓴다. 더 안 좋은 건 여기서부터다. 내 그림을 가지고 해뒀더라면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이라도 끌고 갈 수 있었을 텐데, 그냥 손 놓고 있었으니 그냥 남의 말대로 할 수밖에 없다. 일도 제대로 못하고 아주 바보가 되는 최고의 길이다.
‘적당히’ 놓아 보낼 줄도 알아야 한다
무언가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는 두 번째의 경우는 정말 시간이 없어서다. 그런데 이게 또 핑계다. 무슨 일이든 한 번이라도 더 살피고 조금이라도 더 뒤져보면 뭔가 더 나아질 거 같은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그러니 한 가지 일을 계속 붙들고 있는 거다. ‘방망이 깎는 노인’이 따로 없다. 하나를 제대로 해보겠다고 나머지 하나를 아예 안 해버리는 꼴이 된다.
회사일이나 세상사에도 열심히 노력한 것이 의미가 있는 순간과 이미 더 이상 노력하더라도 결과에는 딱히 별 차이가 없는 순간이 있다. 때로는 그냥 조금 부족하다 싶어도 떠나 보내야 할 일이라는 게 있다. 그건 책임감이 없어서가 아니다. 책임져야 할 다른 일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닥쳐야만 보이는 것들은 있게 마련이다
마지막으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도 생겨나는 아쉬움이다. 이건 스스로의 잘못이 아니다. 그냥 일이라는 게 꼭 그런 지점이 있게 마련이다. 높이 나는 새가 아무리 착륙할 곳을 꼼꼼히 보더라도 살피더라도, 막상 착륙을 할 때가 되어야만 바닥 어디가 울퉁불퉁한 지가 눈에 들어오듯 말이다. 내려앉고 싶은 곳이 산인지 들판인지를 정하는 것은 높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마지막 순간에 안전하게 착륙하기 위해 자갈 하나 피하는 일은 정작 그 순간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애초에 아무리 계획을 잘 세우고 최선을 다해도 막상 닥쳐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어느 새 상황이 달라져서 새로 대처해야 하는 것들, 큰 그림으로 보았을 때는 눈에 띄지 않았던 디테일들 말이다.
닥치는 것과 부닥치는 것의 차이
어딘가를 간다 치면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일단 지도 앱을 켜서 어떻게 가는 게 가장 빠른지부터 체크하는 사람, 그리고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고 보는 사람. 전자가 계획적이라면 후자는 실행에 강하다. 원체 전자의 인간에 가깝다 보니, 요즘은 후자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계획이나 하다가 지레 지쳐버리느니 조금 헤매더라도 미리 길을 떠난 사람들은 체력도 좀 늘고, 헤맨 경험이 있으니 길도 더 잘 찾는 편이랄까. 미루느라 안 하고, 하나에만 매몰되어 다른 것을 못하다 보면, 자연스레 마지막 순간들의 디테일과 대처에도 약해지게 마련이다. 그런 능력은 결국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일이 ‘닥쳐온다’는 건 어쩌면 그것들에 미리 ‘부닥치지 못한’ 까닭이다. 미리 부닥치지 못한 죄로 이렇게 닥쳐서 원고를 쓰는 주제에 하기엔, 좀 부끄러운 말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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