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석의 논다논다] ②게임 폐인은 안녕. 우리는 아날로그로 논다.
백만장자가 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을 알려줄까? 주사위만 잘 굴리면 된다. 남들은 딱 한번만 사는 인생, 하룻밤에 열두 번도 더 살아볼 수 있게 해줄까? 카드만 잘 고르면 된다. 무슨 꿈나라의 이야기냐고? 그럼, 카리브 해의 영롱한 섬을 나의 것으로 만들고,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유능한 명탐정이 되고, 프로방스에 있는 열두 개의 성(城)의 영주가 되는 방법을 말해줘도 믿지 않겠는걸? 그런데 정말로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세계가 있다. 바로 보드게임(Board Game)이다.

보드 게임은 글자 그대로 판(Board)을 깔아놓고 즐기는 게임이다. 주사위를 굴리고, 카드를 뒤집고, 말을 움직이면서 엎치락뒤치락 승부를 가린다.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추억의 게임 <부루마블>을 떠올리시면 된다. 세계를 유람하며 도시를 차지하고 건물을 지어 사용료를 받던 짜릿한 재미를 기억하시는 분이 적지 않으리라. 88 올림픽이 열리는 ‘서울’에 걸려 전재산을 말아먹기도 하고, 황금열쇠 카드를 열었더니 장기자랑이 걸려 신나게 막춤을 추기도 했지.
지금은 <스타크래프트 2> <디아블로 3> <앵그리버드> 등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이 수없이 쏟아지는 시대다. 그런데 왜 이런 철지난 게임 이야기를 할까? 신기하게도 지금 이런 아날로그 게임에 빠진 팬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다. “자리 주삼. 자리 주삼.” 하면서 PC방에서 감정 없는 컴퓨터와 다투고, 밤새 눈이 뻘개지도록 모니터에 빠져들고, 사이버 공간에서 이름모를 누군가와 승부를 다투는 것과는 전혀 다른 재미. 보드 게임이 그런 즐거움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보드 게임의 종류는 정말 다채롭다. 간단히 카드 몇 장으로 초등학생부터 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도 있고, 수백 개의 도구를 가지고 온갖 머리를 짜내야 하는 게임도 있다. <할리갈리>는 카드에 나온 과일의 숫자가 5의 배수가 되면, 먼저 종을 울려 카드를 쓸어가는 게임이다. 아주 간단한 룰이라 누구든 바로 게임에 참여할 수 있다. 나는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같은 야외 행사에 가면 다음 공연이 시작할 때까지 친구들과 신나게 이 게임을 하곤 한다.
<카탄>은 미지의 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자원을 활용해 영역을 넓히고, 거기에서 새로운 자원을 얻어 점차 섬을 차지해 나가는 게임이다. 전체의 판을 읽는 고도의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보난자>는 카드를 이용해 콩을 심고 수확을 거두는 게임인데, 상대 게이머와의 심리전이 아주 중요하다. <푸에르토리코>는 아메리카의 식민지에서 커피와 염료를 생산해서 파는 게임인데, 즐겁게 놀면서 역사와 문화는 물론 인생의 아이러니도 배울 수 있다. 게임에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이 열심히 생산한 물품을 일부러 바다에 버리기도 한다.

아날로그 게임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특별한 매력 역시 놓칠 수 없다. 멋진 일러스트레이션이 그려진 보드 게임 판, 그 위에 놓인 입체적인 말과 카드, 나의 선택과 게임의 흐름에 따라 형형색색 바뀌는 지형…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직접 손으로 만지고 놀아야 한다. 게임판 자체를 소장하고 모으고 싶은 욕구가 불끈 생긴다. <카르카손>은 프랑스에 있는 중세 시대의 성(城)을 배경으로 한 것인데, 게이머들이 차례차례 늘어놓는 타일이 이어지면서 매번 새로운 지형이 펼쳐진다. 우리는 게임을 하면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보드 게임에서 얻는 가장 중요한 즐거움은 어쩌면 게임판 너머의 무엇일지 모른다. 바로 살아 있는 누군가와 마주 앉아 있어야만 이 게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사위를 굴리고 카드를 넘기며 끊임없이 상대와 대화한다. 괜히 깐죽대며 상대가 어떤 패를 쥐고 있는지 떠보기도 하고, 사람들의 어이없는 플레이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30분만 보드게임을 해보면 상대의 성격을 그대로 알 수 있다. 대화가 줄어가는 아빠와 아이, 신학기에 새로 만난 친구들, 워크숍에 지친 직장 동료들이 가장 쉽게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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