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펫(Pet)! 로봇청소기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2003년 국내 최초로 청소로봇인 로보킹을 시장에 내놓고,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도대체 이놈을 로봇으로 자리매김 할 것인가, 청소기로 자리매김할 것인가’하는 정체성의 문제였다. 당시 국내업체로서는 최초로 한국에 출시했을때만 해도 청소 로봇 자체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터라 우리는 수많은 논의 끝에 ‘로봇을 만들자!’로 방향을 정했다. 그래서 로봇의 가장 기본 요소라 할 수 있는 센싱(센서 작동으로 탐색 및 감지)/판단/동작을 구현하고 강조하는 데 무진장 애를 썼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로봇이란, 곧 태권브이를 의미했고 첫 제품화에서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까지도 청소로봇이 태권브이가 되는 건 요원한 일이다. 게다가 로봇 청소기를 기능적인 관점의 딱딱한 기계로만 어필한 것도 문제였다. 그러니, 로봇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로봇=태권브이?)하고, 청소기라고만 하기엔 아쉬운 이 청소로봇을 대체 어떤 컨셉과 디자인으로 전달할 수 있는가가 나의 고민거리일수 밖에.

청소로봇이 아파서 병원 보냈어요~
판매된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어렵게 실제로 청소로봇을 사용하는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청소로봇에 대해 묻자, 그분에게선 의외에 답이 나왔다.
우리는 쟤를 ‘기특이’라고 불러요. 진짜 이게 청소를 제대로 할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뽈뽈 거리며 잘 돌아다녀서요. 얘는 우렁각시란 말이 꼭 어울리더라고요. 나갔다 오면 청소를 해놓잖아요?
나는 ‘어! 이것 봐라’하는 마음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용자들을 더 만나보니, 다들 청소로봇을 ‘샀다’가 아닌 ‘데려왔다’로, 그리고 고장이 나서 수리를 보낼 때도 “아프다, 병원 갔다”고 말하고, 충전할 때는 “밥 준다”는 표현을 썼다. 애칭도 다양했는데, <보낑이>, <예삐>, <물방개> 등으로 일종의 애완동물처럼 부르고 있었다.
그래, 로봇이 아니라 Pet이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상품기획, 디자인, 개발에서 모인 개발팀은 머리를 맞댄 회의 끝에 ‘기술’보다는 ‘감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디자인 방향도 ‘로봇 같은 느낌’에서 ‘스마트하고 새로운 가족’으로 선회하여 기존의 ‘로봇’이나 ‘청소기’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기로 했다. 디자이너들은 보다 친근하게 소비자들이 느낄 수 있도록 베이스 컬러를 ‘퓨어 화이트’로 하고 인터렉티브한 느낌을 가미하기 위해 블루 라이팅과 다크 라인으로 포인트를 준 디자인 프로토타입을 제작했다. 그러나 제작된 프로토타입을 두고 내부의 반응은 한마디로 싸늘했다.
“어찌 되었든 청소를 하는 건데, 흰색은 안돼. 때가 탈 거라고.”
“요즘 가전 트렌드는 컬러와 패턴인데, 펑퍼짐한 화이트라니…”
“기능이 너무 드러나지 않잖아.”
나를 비롯한 개발팀은 다시 고민에 빠지게 되었고, 몇 가지 다른 스타일로도 제작해보았으나 소비자 조사에서의 결론이 틀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만 더 들 뿐이었다. 결국, 우리는 이 디자인을 의미있게 전달해줄 수 있는 스토리를 한번 찾아보자고 했고, 며칠 간을 스토리 발굴에 매달렸다.
디자인 위에 스토리를 입혀라~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이렇다할 스토리를 발굴하지 못하고 있던 찰나, 지친 누군가가 화이트보드가 아닌 로보킹 위에 장난 삼아 보드 마카로 직접 뭔가를 썼다 지웠다 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목격한 나는 “아, 맞다! 화이트 보드. 매끈하고 넓게 처리된 하얀 면이 심심해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만의 장점이 될 수 있어!” 라고 소리 쳤고, 모두들 저마다 수성펜을 들고 모여들었다. 그 다음부터는 스토리가 줄줄 나오기 시작했다.
“부부 싸움하고 나서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 아내에게 ‘미안해, 사랑해’ 라고 적은 로보킹을 리모콘으로 밀어 넣으면 금방 화해 되겠는데.”
“요새는 직접 꾸며보는 것을 좋아하는 소비자가 많으니, 이 면에 스티커나 마카 펜으로 나만의 연출을 할 수도 있고.”
“동물처럼 꾸며서 이름을 붙여도 재미있겠다.”
사랑의 메신저로 다시 태어난 로보킹
우리는 최종적으로 디자인 컨셉을 ‘사랑의 메신저’로 정하고 우리가 만든 프로토타입 위에 수성펜으로 몇 가지 메시지를 적어 소비자들에게 직접 평가를 듣기로 했다. 장년층에서는 ‘무슨 장난 같은 소리냐’는 핀잔도 있었지만, 주요 타겟으로 삼았던 2030대 층에서는 아이디어가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미지까지 더해졌다며 반겼다. 이러한 반응을 토대로 출시하게 된 이 제품은 청소만 하는 ‘기계’가 아닌 ‘사랑을 나누는 메신저’라는 콘센트와 자신만의 취향과 개성에 맞게 튜닝할 수 있다는 열린 디자인 때문에 지금은 많은 고객의 사랑을 얻고 있다.
윤석원 차장은 C&C 상품기획그룹에서 2004년부터 로봇킹 청소기 개발을 담당하면서 로봇이 있는 곳이라면 전 세계 곳곳을 발로 뛰며 찾아다닌 자타공인 로봇 청소기 전문가. 틈틈히 읽는 책을 주제로 한 블로그를 운영하며 1년에 보통 60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 최근에는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바이올린을 배우는 재미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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