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의 공장이 밀집한 산업 도시입니다. 그중 LG전자의 ‘LG스마트파크’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45여 년 동안 창원과 함께 성장한 곳이자, LG전자의 글로벌 신제품이 탄생하는 요람이기 때문이죠. 작년 LG전자가 선보인 신개념 냉장고인 ‘LG 디오스 오브제컬렉션 무드업(이하 무드업 냉장고)’도 창원 출신이랍니다. 이를 기념해 LG전자는 포토그래퍼 김용호 작가에게 프로젝트를 의뢰했어요. 김용호 작가는 신성한 노동의 결과물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살펴보면서 팩토리를 넘어 창원이란 도시 전체로 시야를 넓혔습니다. 전시에 ‘Made in Changwon: M623GNN392’(이하 Made in Changwon)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랍니다. 작년 10월 서울에서 열렸던 전시는 올해로 넘어와 3월 28일부터 4월 2일까지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리고 있어요. 전보다 무려 5배나 큰 규모입니다. 창원 속에 신비하게 존재하는 또 다른 창원과 LG스마트파크에 대한 영감을 전시 공간에 구축한 모습은 어떨까요. 김용호 작가에게 이번 전시의 이모저모를 들어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잘 지내셨나요? 워낙 위명이 높지만 작가님을 처음 접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니 자기소개를 짧게 부탁드려도 될까요?
하하. 자기소개라니 무척 어색하네요. 저는 사진 찍는 김용호입니다. 커머셜과 파인 아트 작업을 병행하고 있어요. 지금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Made in Changwon» 전시가 LG전자라는 대기업과 컬래버레이션하는 커머셜 작업에 속하고요. 그전에는 현대카드, 현대자동차와도 협업했습니다. 파인 아트로는 지난 2007년 대림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했을 때 많은 분이 방문해주셨어요. 당시 개관 이래 유료 관람자가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웃음) 그 밖에 연잎을 물속에서 찍은 ‹피안›이나 ‹신여성› 시리즈도 있고…아, ‘한국문화예술명인’ 프로젝트도 빼놓을 수 없네요. 워낙 여러 작업을 진행한 터라 간단하게 압축해서 말하기가 좀 민망합니다.
지난 40여 년간의 복잡한 작업을 총망라해 사진집 『포토 랭귀지Photo Language』를 작년 출간하셨죠. 반향이 엄청났다고 들었어요.
사진 책이 예술 분야에서 판매 1위를 찍은 건 유례없던 일이래요. 아주 잠깐이긴 했지만요. (웃음) 아무리 훌륭한 영화라도 줄거리를 스무자 이내로 설명하지 못 하면 재미가 없다는 말이 있어요. 사실 이런 관점은 제게도 해당돼요. 이것저것 다양한 작업을 이어 나가는 터라 애매하고 핵심이 없어 보일 수 있거든요. 이제 『포토 랭귀지』 한 권으로 김용호라는 창작자를 대변할 수 있어서 무척 기쁩니다.
작가님의 다재다능함은 업계에 널리 알려져 있어요. 어떻게 이처럼 다채롭게 활동하실 수 있나요?
남들이 보면 대단한 일을 많이 한 것 같지만, 그냥 관심이 많아서 그런 거예요. 다각도로 동시에 작업하려면 시간을 나눠야 하므로 작업 속도가 느리다는 단점도 있답니다. 그래도 이번 창원 전시를 생각하면 이런 다양성이야말로 제 경쟁력이구나 싶어요. 예전에는 다양성을 추구한다고 말하면 전문성이 떨어져 보였어요. 그래서 한 우물을 깊게 파라는 조언도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멀티 플레이어의 시대예요. 저만해도 옛날부터 커머셜 작업을 개인 작업으로 확장한 경우가 참 많았어요. 백남준 선생님 사진은 원래 어떤 잡지에서 한국의 아티스트를 찍어달라는 의뢰가 자가발전한 경우예요. 더 많은 아티스트를 기록하고 싶어서 ‘한국문화예술명인’이라는 저만의 프로젝트로 확장했죠. 그래서 백남준 선생님을 찍으러 뉴욕의 스튜디오로 날아갔고요. 이런 식으로 일과 작업의 경계를 넘나드는 게 일상이었어요.
작년 LG전자에서 엄청난 신제품을 내놨어요. 냉장고 겉면에 붙인 패널을 통해 19만 개의 색 조합이 가능한 ‘무드업 냉장고’예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작가님과 협업했다고 들었는데요. 무드업 냉장고를 실제 보셨을 때 어떤 느낌이 드셨어요?
냉장고가 탄생한 LG스마트파크에 방문해서 개발팀과 CMF연구팀, 제조팀과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냉장고에 굉장히 많은 기술과 노력이 숨어있더군요. 겉면의 색이 다채롭게 자유자재로 바뀌는 무드업 냉장고는 마치 감정을 지닌 생물처럼 다가왔어요.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하는 것 이상의 대단한 기술적, 아니 예술적 진보라는 생각이 들었죠. 흔히들 ‘예술이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잖아요. 예술 작품이 아닌 대상에게 ‘예술이다’라고 말할 때의 느낌은 형용할 수 없는데요. 무드업 냉장고에서 기계가 추구하는 높은 경지의 미학을 느꼈어요.
그런데 작가님이 기록한 대상은 창원이라는 도시 전체를 아우르고 있더라고요.
연구원들이 쏟은 숭고한 노동과 최첨단 기술도 감동적이었지만 LG스마트파크가 45년 넘게 창원과 함께 동반 성장했다는 사실에서 큰 영감을 얻었어요. 결국 무드업 냉장고는 LG전자의 스마트 팩토리와 이를 둘러싼 창원이라는 도시가 공동으로 키운 제품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지요. 제가 살짝 예를 들어볼게요. 저희가 먹는 밥 한 끼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에요. 각기 달리 떨어진 산지에서 그곳의 바람, 물, 땅, 노동이 어우러져 탄생한 수많은 재료들이 모인 결과죠. 감사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무한한 자연이 주는 혜택을 영위하는 거니까요. 무드업 냉장고도 마찬가지예요. 첨단 기술, 연구, 노동의 산물을 넘어 창원이란 도시에 퍼져있는 수많은 이야기가 응집해 낳은 결과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창원의 모든 것을 채집하고 싶었죠. 흘러가는 구름, 불어오는 바람, 기계적인 냄새, 바닷물 등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종류까지요. 그래서 사진에는 조그마한 마을 박물관부터 바닷가에서 잡은 뱀장어까지 이 도시를 둘러싼 수많은 모습이 담겨있어요. 이들 모두가 어떤 위대한 탄생에 일조하고 있으니까요.
대상의 새로운 면모를 이끌어내는 것은 작가님 작업이 지닌 독보적인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작가님은 ‘Made in Changwon’ 프로젝트를 통해 어떤 부분을 새롭게 강조하고 싶으셨나요?
기업과의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기업이 지역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거예요. 한적한 시골에 거대한 공장이 생기면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위한 숙소부터 시장, 음식점, 미용실, 오락실 등등 여러 가지 편의시설이 생겨요. 이렇게 환경이 사회적으로 변하는 이야기를 소재 삼아 작업으로 표현하고 싶더군요. 그리고 이를 기록하는 작업은 결국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애드버타이징이 아니라 소속 임직원을 위한 인버타이징 개념 아래에서 움직여요. 요즘 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의 애사심이 없어진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잖아요. 이직률도 높고요. 이럴 때 외부의 시각에서 회사를 바라보고 거기서 발견한 새로운 모습을 공유하는 일은 무척 중요해요. 자신이 늘 보던 것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면 ‘아, 우리가 이런 회사구나. 나는 이런 일을 하는 거구나’ 하면서 전에 없던 발견의 기쁨을 경험하거든요. 30년 이상 근속하며 성실하게 일하던 공장의 장인들은 지금의 LG 전자가 세계 정상에 오르기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물심양면으로 노력한 숨은 공로자예요. 이런 이야기와 장면을 채집해서 사람들과 공유하면 자신이 해온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회사 내부를 다시 돌아보는 느낌도 따라오고요. 이런 인버타이징 개념이 ‘Made in Changwon’에서도 잘 나타나죠.
지금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Made in Changwon》는 작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전시를 보완해 5배 더 넓은 장소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 번 열린 전시가 해를 지나 진화하는 경우는 무척 드문 일인데요. 이번 전시의 콘셉트가 궁금합니다.
신제품을 마주할 때 일반인이 공학적인 우수함을 알아차리는 건 쉽지 않아요. 사실 해당 분야에서 일하는 전문가가 아니면 큰 의미도 없고요. 그래서 이번 전시의 초점은 ‘신비함’에 뒀어요. 상상을 초월한 기술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지?’라는 의문과 놀라움의 순간을 선사하고 싶었죠. 그래서 이번 전시장은 창원이란 도시를 축소한 신비로운 창원을 상징합니다. 가로 60m, 세로 40m에 달하는 전시장 한쪽 벽면에는 엄청난 크기의 스크린을 설치했어요. 가로 50m, 높이 9m입니다. 얼마나 거대한 화면인지 상상이 되나요? (웃음) 여기에는 창원의 자연, 사람, 도시 풍경이 압도적인 느낌의 영상으로 나타나요. 게다가 저 벽면 끝에 유리를 설치해 끝없이 확장하는 세계가 펼쳐집니다. 전시장 한 가운데에 자리 잡은 ‘메디테이션 챔버’는 제품 테스트 공간인 ‘챔버’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에요. ‘챔버’ 안에는 무드업 냉장고문을 끊임없이 여닫는 테스트 과정이 담긴 영상이 나오는데요. 규칙적으로 끝없이 진행되는 품질 검사를 보노라면 이거야말로 명상의 단계라는 느낌을 선사해요.
그리고 천장에는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지름 7m짜리 금속 구가 달려있습니다. 이 오브제는 창원이라는 도시가 생기기 전부터 존재하던 우주적 존재를 상징해요. 스스로 빛을 발하는 대신, 스크린에서 쏟아지는 영상과 메디테이션 챔버에서 스며 나오는 빛을 감쌉니다. 다채로운 사진, 영상, 그리고 오브제로 채워진 전시 공간은 하얀 벽에 사진을 걸어 전시하는 익숙한 사진전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숨은 요소로 청각이 있어요. 뮤지션 정마리가 부르는 ‘정가正歌’를 BGM으로 준비했죠. 최첨단을 달리는 기계의 모습과 정가의 전통적인 면이 뒤엉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성하게 북돋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정가 역시 매우 노동 집약적인 장르라는 점이에요. 한 시간 가까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노래를 한없이 이어가야 하거든요. 이런 사실을 알고 전시장에 들어가면 더욱더 귀한 경험이 될 거예요. 사람들이 전시장에 발을 디뎠을 때, ‘와!’하고 감탄사를 내지르면 좋겠습니다
작가님은 “형식은 본질의 표면이나, 진실은 보이는 것 너머에 있다”는 말을 철학로 삼고 계신데요. 이번 전시에 어떻게 녹이셨나요?
무엇이 형식이고 본질인지 꼭 명징하게 구분 지으려 하진 않아요. 둘은 항상 등을 댄 채 이웃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요. 전시장을 창원의 축소판이라고 말했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이를 표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혹은 새로운 진실을 마주할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겁니다. 상상하지 못하던 무언가를 자극하거나, 혹은 생각할 수 있도록 관점을 개방하는 게 이번 전시의 목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람객과의 교감이 무척 중요하겠네요.
예술의 힘은 대중에게 감동을 주는 데에 있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며 기존의 인식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은 결코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좋은 창작자라면 대중에게 세상의 다양한 면을 보여줘야 해요. 잠재된 무언가를 끌어내고 공유하며 서로 앞으로 나아가야지요.
다양한 작업을 동시다발적으로 하시는 만큼 시간 관리가 철저하실 것 같아요. 창작과 일상의 균형은 어떻게 유지하시나요?
루틴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성공한 창작자의 삶을 살펴보면, 분야를 막론하고 대부분 하루를 루틴하게 보내요. 아침에 일어나 달리기하고, 집으로 돌아와 차 한 잔을 마신 후, 집무실에 앉아 일을 하는 것처럼요. 엄격한 수도승처럼 일을 대하는 거죠. 대신 바쁘지 않을 때 저는 주말마다 서점에 가거나, 홍대 쪽에 자리한 독립서점에 들러 책을 보곤 해요. 풍부한 상상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활자를 시각화하는 훈련을 하는 거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고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의 소셜 미디어도 꼭 챙겨 봅니다.
요즘 작가님을 잡아끄는 머릿속의 화두는 무엇인가요?
사회 전반적으로 사진의 영향력이 미약한 것 같아요. 그래서 사진의 힘을 환기할 수 있는 여러 시도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진 페스티벌에도 관심이 있고요. 먼 미래에는 뉴욕의 국제사진센터 같은 포토그래피 기관을 세우는 게 꿈이에요. 단순히 수장고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기획 전시를 열면서 사진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늘리고 싶습니다.
이루고 싶은 것이 많기에 언제나 현재진행형 작가로 활동하실 수 있군요!
창원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제게 의미가 참 큽니다. 대형 전시를 연 것도 오랜만이고, 포토그래퍼를 넘어 종합예술가로 대우하며 프로젝트를 일임한 LG전자 측에 고마운 마음뿐이죠. 저는 전시장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라고 봐요. 제가 아트 디렉팅을 제대로 못 했으면 제 사진도 빛을 발하지 못했을 텐데, 사진을 기반으로 영상도 만들고, 오브제에 집어넣기도 하고, 새로운 조형물도 만들면서 점점 힘을 갖게 되었어요. 이번 기회를 통해, 사진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전시장에 방문한 관람객과 LG전자 임직원분들이 감상의 대상을 넘어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진의 힘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