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작품 속 시인이 노래한 금성 라디오와 LG세탁기
올여름 유난히 비가 자주 오네요. 저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비를 좋아하는 편인데, 비가 오면 커피 한 잔만 있어도 한껏 감수성에 젖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사실 저 역시 학창시절엔 남 못지않은 문학 청년이었거든요.^^ 요즘도 가끔 비 오는 날에는 시집을 들춰보는데, 며칠 전에는 김수영 시집에서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분명히 대학 시절에 재미있게 읽은 시인데, 그때는 ‘금성’이라는 브랜드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궁금증이 발동해서 제가 아는 소설이나 시에 ‘금성’이나 ‘LG’ 브랜드명이 나타난 작품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제법 눈에 띄더군요. ^^
시인 김수영이 노래한 금성 라디오, A-504
명랑하지 않던 시대에 명랑한 날을 꿈꾸며
금성라디오 A504를 맑게 개인 가을날
일수로 사들여온 것처럼
500원인가를 깎아서 일수로 사들여온 것처럼
그만큼 손쉽게
내 몸과 내 노래는 타락했다.
헌 기계는 가게로 가게에 있던 기계는
옆에 새로 난 쌀가게로 타락해가고
어제는 카시미롱이 들은 새 이불이
어젯밤에는 새 책이
오늘 오후에는 새 라디오가 승격해 들어왔다
아내는 이런 어려운 일들을 어렵지 않게 해치운다
결단은 이제 여자의 것이다
나를 죽이는 여자의 유희다
아이놈은 라디오를 보더니
왜 수련장은 안 사왔느냐고 대들지만
– 김수영,〈금성 라디오>(1966),《김수영 전집》(민음사, 2003) 中
LG의 전신이기도 한 금성사는 1951년 최초의 국산 라디오 A-501을 생산했는데요. A-504는 그 후속 제품입니다. 원래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 정부는 라디오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치품 단속’ 목록에 들어갈 정도였다고 하네요. 그러다가, 정부 정책과 뉴스 전달 수단으로 라디오를 새로 보기 시작했고, ‘농촌 라디오 보내기’, ‘1가정 1라디오’, ‘전자제품 국산화’ 정책에 힘입어 급속도로 라디오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국민들은 조금 다르게 라디오를 받아들였습니다. 당시는 신문과 잡지를 빼면 별다른 오락 도구가 없던 시절인지라, 국민은 라디오를 통해 당대 명가수의 노래와 라디오 드라마를 듣고, 울고 웃으며 전후 상실감과 시대적 불안감을 달랬던 것이지요. 그러니, 1959년 신문광고에 나왔다는 “명랑한 가정마다 금성 라듸오”라는 헤드카피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그러기에, ‘명랑하지 않은 시대에 명랑한 시대를 꿈꾸며’ 시인도 ‘손쉽게 내 몸과 내 노래는 타락했다.’고 괴로워 했었겠지요.
(LG전자 역사관 <그때 그 광고> 참조)
시인 장석남이 노래한 금성 라디오
그리고 30여 년이 흐른 1995년 장석남 시인이 다시 한 번 금성 라디오를 노래합니다. 제가 가장 멋진 책 제목으로 꼽는《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문학과지성사, 1995)에서 말이죠.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드뷔시의
기상 개황 시간
나는 툇마루 끝에 앉아서
파고 이 내지 삼 미터에
귀를 씻고 있다
萬頃蒼波
노을에
말을 삼킨
발자국이 나 있다
술 마시러 갔을까
너 어디 갔니
로케트 건전지 위에 결박 지은
금성 라디오
한번 때려 끄고
허리를 돌려
등뼈를 푼다
가고 싶은
격렬비열도
(요즘 라라 크래커는 왜 안나오지?)
– 장석남,〈격렬비열도>,《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문학과지성사, 1995) 中
이 비장한 이름의 섬은 충청남도 태안군에 실제로 존재하는 섬이랍니다. 시인의 고향은 서해 덕적도고요. 그러고 보면, 시 속의 장면이 그려지는 듯합니다. 저무는 노을 밑 치는 파도와 마주 앉은 시인, 로켓 건전지에 칭칭 동여맨 금성 라디오 하나만이 외로움을 달래주는 장면 말이지요. 김수영 시인의 고백처럼 괴롭지는 않지만, ‘가고 싶은 격렬비열도’라는 구절이 왠지 뭉클하게 다가오네요. 생각해 보면 그즈음 시골에 가면 정말 로케트 건전지에 동동 동여매어진 금성 라디오가 오래전 분가한 막내 삼촌 방 흙벽 밑에 놓여 있곤 했습니다.
시인 강영은이 노래한 LG 세탁기
내친 김에, 다른 가전제품에 관한 시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있네요. 트롬 세탁기에 관한 시 한 편입니다.
‘하느님도 가끔은 지구라는 통을 통째로 돌리신다’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고 우레•번개가 칠 때
벼락과 함께 땅에 떨어져 수목을 찢어놓고 사람과 가축을 해친다는
뇌수 한 마리, 우리 집 세탁실로 들어왔다
들어온 날부터 외눈박이 눈을 부라리더니
남편을 삼키고 나를 삼키고 아이들을 집어 삼킨다
소용돌이치는 220볼트, 쇠 이빨이
뒤따라온 골목길과 먼지 묻은 발자국을 지워나간다
열대성 호우 쏟아지는 내장 속에서
술 취한 바지와 가리지날 꽃무늬 원피스가 엉켜 붙는다
시너지효과만 주절대는 팬티와 브라자, 쌍방울표
메리야스는 멀티 오르가즘을 탐색하다 빈혈을 일으킨다
게임기에 빠진 모자와 양말이 게임 속도를 높인다
천상의 속도와 지상의 속도가 맞붙자
괄약근을 조이는 세상이 쿨럭거리며 구정물을 쏟아낸다
잃어버린 낙원이 물기 하나 없이 탈수 된다
우리 아직 살아 있지?
햇빛 좋은 베란다에 환골탈태한 감색 바지와 꽃무늬 원피스
높이가 다른 모자와 양말이 나란히 널린다
거꾸로 보는 하늘이 파랗다
하느님도 가끔은 지구라는 통을 통째로 돌리신다
-강영은,〈트롬세탁기에 관한 보고서>,《시에》2009 여름호 中
앞선 두 편의 시에 비해 표현이 강하지요? 그런데, 사실 여러 시인의 시를 읽는 재미가 바로 이런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시인마다 사물을 대하는 표현 방식이 모두 다르니까요. 어쨌거나, 세탁기는 20여 년 전쯤만 해도 딸을 출가시키는 우리네 어머니들에게는 가장 많은 사연을 준 가전제품이었는데요. 당신은 평생 손빨래를 하더라도 딸에게만은 세탁기를 안되면 짤순이(탈수기)라도 혼수로 장만해주고 싶었던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세상이 참 많이 변했습니다. 사실 그 덕에 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비가 자주 오는 여름이 그다지 눅눅하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지요. (저희 집에서는 트롬의 건조기능을 애용하고 있습니다. ㅋ~^^)
위에 소개하지 않은 LG전자의 브랜드와 제품들이 등장한 문학작품들을 두 개 더 소개하겠습니다.
박해림 시, 〈금성 라디오〉 – 《고요, 혹은 떨림》(고요아침, 2004)
김하인 소설, 《내 마음의 풍금소리》(생각의나무, 2002)
혹시 이 밖에도 LG를 노래한 문학 작품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영석 과장(석K)은 국문학도 출신으로 정보통신 취재기자 생활로 직장 첫걸음을 디딘 이후, 현재 한국지역본부 Brand Communication팀에서 브랜드 사이트 및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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